<지구가 떨고 있다> 탄탈로스의 비극




백신주사 한방에 코로나가 맥을 못춘다.

얼마 전까지 그 바이러스 앞에서 벌벌 떨던 인간의 나약함이 꿈같다.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직장으로 점점 자리를 잡아가니 이제사 사람 사는 세상 같다.

앞으로는 붙이는 백신에 먹는 백신까지 나온다니 제발 바이러스 없는 세상이 되길 염원해본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Zoom 수업’이라는 영상놀이의 형벌이 다신 없기를 기도한다.

모름지기 교육이란 스승과 제자가 눈을 마주하고 몰입하고 소통해야 하지 않는가?

1년간 내 자녀들의 머릿속엔 ‘영상’외에 무엇이 남아있을지 측은하고 가엾다.

그간 잡힐 듯 잡힐 듯 애태우며 버텨온 코로나와의 긴긴 전쟁이

탄탈로스의 비극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탄탈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제우스와 플루토의 아들이다.

거인 탄탈로스는 신들을 시험한 죄로 타르타로스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그는 지옥의 호숫가에 얽매임을 당했다.

목이 말라서 턱앞에 흐르는 물을 마시려 입을 벌려 애를 써보지만 물은 멀리 달아나 버리고,

머리위엔 신선한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렸으나 입에 넣으려 혀를 내밀어 보지만

과일은 옆으로 비껴가고 만다.

탄탈로스는 눈앞에 맑은 물과 과일을 바라보면서도

갈증과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깊은 고뇌에 사로잡혀 산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것, 이상과 현실의 차이, 하면 꼭 될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되지 않는 안타까움, 이것을 탄탈로스의 비극이라 한다.

백신이 나와 한숨은 돌렸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옛날처럼 제자리로 돌아가

과거의 일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간 인간이 자연생태계를 보살피고 지켜가며 살지 못한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끝나도 다음과 같은 ‘변화된 일상’이 되리라는 진단을 내린다.

첫째,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다. 불만 불평을 하면서도 결국 자기 국가를 믿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된다.

둘째, 직업의 변화가 생긴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서 사람 없이 일하고 돈 버는 기계화된 시대가 된다.

셋째,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된다.

넷째, 국가나 국민이 모두 복지제도에 올인하게 된다.

다섯째, 환경파괴, 자연계 파괴문제의 공동 관심사가 생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인간의 삶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기 때문이며 이 문제야말로 전 세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삭막한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말이다.

21세기를 살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탄탈로스의 비극’이 생각나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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