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12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방송사들은 그날 동일본대지진의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건물들이 무너지거나 쓰나미가 몰려오는 당시의 영상이 아직도 그때의 충격과 슬픔의 트라우마를 겪는 일본인들에게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매스컴을 통해 마츠토야 유미 가수의 ‘봄이여 오라’라는 노래가 은은히 흘렀습니다.
지진의 트라우마가 걷히고 어서 속히 안정된 삶을 맞게 되기를 바라는 ‘인생의 봄날’을 기원한다는 뜻의 노래입니다. 너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인생의 봄날이다’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이 살아온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서글퍼졌습니다. 부모형제 없이 쓸쓸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의 겪은 인생의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졌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불시에 재난을 당하고 죽어간 분들 앞에서 참 이기적이고 사치스런 생각입니다.
이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 살아보니까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에서 해방 되니 제일 먼저 사랑하는 고국이 그리워졌습니다. 어머니의 7주기 기일도 4월이라서 얼른 한국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 그래선지 간사하게도 ‘인생의 봄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국영방송사 NHK는 매년 동일본대지진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진을 겪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스토리의 드라마가 만들어졌습니다. 대지진을 겪은 지 5년이 지난 때부터는 슬픔을 간직한 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냅니다. 대지진이 있은 지 10년째 되는 해에 제작된 드라마의 제목은 ‘당신 곁에서 내일이 웃고 있어요’였습니다.
드라마의 흐름처럼 실제로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각자의 인생스토리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때에 살아남은 한 소녀는 12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에게 지진대피요령을 가르치는 보육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한 소년은 연예인이 되어 매년 3월 11일이면 기획되는 지진재난 특별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들이 마치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봄날의 벚꽃나무처럼 보입니다. 힘든 시련의 시기를 잘 이겨내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봄’은 옵니다. 시련을 인내하며 극복한 사람에게 오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내와 함께 나란히 비행기에 앉아 오랜만에 한국나들이에 나서는 나 또한 감사하게도 ‘인생의 봄’을 맞으며 축복의 대열에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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