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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의 초록이야기> 빈둥거릴 자유


입에 물집이 생기도록 쓰고 다니던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거리두기도 해방이란다. 모두들 고대했던 일상들, 바쁘고 활발한 발걸음, 거리가 신선해 보인다. 날씨도 시원해서 모처럼의 휴일을 제부의 차에 운전사 조카까지 대동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수원바닥을 누볐다.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가 낭만을 더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수원납골당, 오래전 하늘나라에 간 막내 동생의 납골함 앞에서 아버지의 대성통곡은 내가 고모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도록 가슴을 후벼 팠다. 종일 치근대던 가을비가 밤이 되니 더욱 요란해져 내 방 창문을 마구 흔들어댄다. 내일이면 또다시 콩닥거릴 바쁜 일상, 나는 오늘의 아픔과 내일의 바쁨을 잊을 만한 추억 하나를 꺼내 마음을 힐링하기로 했다. 이럴 땐 아주 한가했던 추억이 제격이다.

일명 ‘코로나방학’으로 너무도 한가하던 어느 날, 도훈이와 도균이가 병아리 부화 실험을 했단다. 부화 기간이 21일로 알고 있었는데 늦어지는 병아리 부화에 애가 탄단다. 시중에 판매되는 부화기가 아니고 모든 걸 둘이 직접 만들었다니 기특하다. 스티로폼 박스에 인터넷으로 전선이랑 전구, 부속품들을 주문해서 일일이 만들었단다. 두 번이나 전선 연결이 잘못되어 불이 번쩍해서 엄마랑 두 아이의 간이 콩알만 해지기도 했단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니 가끔씩 부화기 안에 전구불이 켜진다. 온도에 반응하는 건지 시간 간격으로 반응하는 건지 모르겠단다. 어느 날, 도훈이가 보여줄 게 있다며 조심조심 화장실로 가잔다. 어두운 화장실 안에서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알을 비춘다. 보인다! 보였다! 안에서 작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윤희는 ‘도시농부’가 되겠단다. 성격유형검사를 했는데 적성에 맞는 직업이 농부란다. 베란다에다 콩도 키우고 보리도 키웠단다. 상 위에 펼쳐놓은 보리 낟알 사진도 찍었다. 콩은 벌써 맛있는 콩밥을 해 먹었단다. 나는 윤희를 ‘베란다 농부’라고 불렀다.

도훈엄마는 도훈이랑 도균이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고 한 소리 하시고, 윤희엄마는 윤희가 집에서 빈둥거리니 살이 쪄서 눈이 작아졌다고 하신다. 그러나 그 말속에 들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내 눈에는 읽어진다. 뭔가를 자발적으로 해내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뭔가를 이루어내는 뿌듯함은 어른들도 같이 느낀다.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어른들의 모처럼의 여유도 좋다.

늘 바쁘게 지내던 아이들이 빈둥거릴 여유가 있어 그나마 좋다. 심심하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은 더 듣기 좋다. 자유롭게 즐기렴~ 언제 너희들이 심심해보겠니~~ 언제 너희들이 빈둥거려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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