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목사의 할아버지의 일기>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맞잡은 고사리 손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크고 좋은 종합병원은 St. Jude이다.

얼떨결에 나는 그 좋은 병원에서 초고속으로 심장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되었다.

후에 들으니 영화 같은 007작전의 스토리가 있어 가능했다.

코로나사태로 면회도 금지된 채 날마다 지쳐가는 나로서는

유리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잔디를 보는게 그나마 병실에 누워

아픔과 외로움을 달래줄 유일한낙이었다.


절망이 하늘을 찌를 듯한 어느 날, 그 유리창밖에 불쑥 나타난 천사들이 있었다.

똑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며 할아버지를 부르는 있는 꿈에도 그리운 손주들이었다.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날 때 기분이 그랬을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베개를 심장에 대고 옆으로 비스듬히 침대에서 일어나라는 교육을 수없이 받았건만

나는 허겁지겁 베개를 가슴에 대는 시늉을 하며 일어나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손주들의 손을 잡았다.

문밖으로 튀어나가 끌어안고 싶었다.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어서 퇴원해서 손주들과 놀고 싶고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랴!

가운데 대문짝 만한 유리창이 가로막혀 손주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신세 같았다.


그때 5살 건이가 쪼그만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찌르르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뒤로 돌아섰다.

수아와 희주의 진지한 기도모습은 어른같이 든든했다.

손주들의 그 기도를 의지하고 싶었다.

어서 벌떡 일어나 퇴원하여 함께 집으로 가고 싶었다.

침대를 붙들고 한참을 꺽꺽 소리치고 울었다.

수술하는 날도 꼭두새벽에 병원주차장까지 어미와 함께 와서

휠체어에 앉은 나를 가운데 두고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던 어른 같은 아이들이다.

아, 어떻게 그 모습들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핏줄이 뜨겁다는 말, 자식이 울타리라는 말,

손주들이 눈에 밟힌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뼈저리게 느낀다.

그간 얼마나 인간미 없는 할아버지였는지 가슴이 시리고 저리다.


간호원이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병실로 들어서더니

아들내외가 전달해 달랬다며 iPad를 주고 갔다.

아- 이제 이 iPad로 날마다 화상통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간호원의 부축으로 겨우 침대에 올라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손주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니 흐뭇하고 행복하여 빙긋이 웃음이 났다.

그런데 눈에서는 자꾸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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