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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잃어버린 30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봄은 2012년 4월입니다. 그날은 어릴적 헤어졌던 어머니와 32년만에 다시 만난 날입니다. 잃어버린 어머니와 나의 30년이 끝난 날입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살고 어머니는 한국에 살고 계셨습니다. 엄마와 나는 국경을 넘어 1년에 한번 잠시 만나고는 나의 짧은 휴가를 아쉬워하며 헤어지곤 했습니다.

일본에는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경제가 30년동안 성장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잃어버렸던 긴긴 30년의 세월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비슷했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돈을 버는 기술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요령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채 30년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30년만에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어머니는 시간 날 때 읽어보라며 까만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A4용지 2장을 건네 주셨습니다. 한 장은 어머니가 예전에 쓰신 간증문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세례교육에 필요한 성경지식 요약본이었습니다.

 

간증문은 어머니의 인생고백과 같은 내용인데 중간중간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실 30년 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왔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간증문을 읽고, 힘든 시간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인내하는 삶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저 환경이 이끄는 대로 살던 나에게 어머니가 남겨준 A4용지 2장은 새로운 목표와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때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노래가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린 적이 있습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져 생긴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30년만에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아들과 헤어져 있는 어머니에게 30년이라는 긴 시간은 한국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 30년간의 긴 날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아들인 나는 지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나를 만난 어머니는 무척이나 분주하셨습니다. 그동안 해주고 싶어도 해주지 못한 일들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들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드시고, 내 손을 잡아끌고 식당도 가시고, 옷가게도 데려가 옷도 사주시고, 밤에는 못다한 과거 이야기로 날밤을 새셨습니다.

어머니는 간증문 마지막에 “수의엔 주머니가 없음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돈과 명예와 세상적인 성공은 결국 부질없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어머니가 주신 사랑과 가정교육은 나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도 4월이었습니다. 나는 매해 그날, 아내와 함께 어머니의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어머니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4월의 봄, 나의 인생전환점이 된 4월의 봄, 잊을 수 없는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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