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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 코타츠 겨울



벚꽃은 봄에 피는 꽃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어느 날, 느닷없이 벚꽃이 피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춥다가 따뜻해지고 춥다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반복한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벚나무가 봄이라고 착각을 해서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이상기후입니다. 벚꽃은 겨울동안 힘을 비축해야 봄에 꽃을 피운다는데 계절을 착각해 일찍이 꽃을 피운 벚나무는 미리 힘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정작 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벚나무에게 겨울이란 단지 춥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힘을 기르며 인내하는 시기라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람에게도 겨울이 주는 계절의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한랭화가 심해졌는지 유난히도 춥고 춥습니다. ‘코타츠’ 생각이 간절합니다.


일본은 특별한 겨울문화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뜨거운 물을 욕조에 가득 받아놓고 몸을 녹입니다. 그리고 탁자와 열선난로를 합쳐서 만든 코타츠에서 휴식시간을 가집니다. 사각형 식탁모양의 코타츠에 발을 넣고 있으면 온몸이 따뜻해지며 겨울의 추위를 잊게 됩니다. 좁은 코타츠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 발을 부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의 시간을 만듭니다.

온천과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인 특유의 겨울나기 방법입니다. 물절약을 위해 데워진 욕조물을 몇일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기능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가족들이 순서대로 10분정도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풉니다. 처음엔 가장 어른인 할아버지 할머니, 그 다음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 다음엔 아이들이 차례로 욕조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자연히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방법을 몸에 익힙니다.

 

전쟁중인 러시아에서 소년병을 모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름지기 아직 어린 청소년들은 따뜻한 가정의 보호속에서 학교를 다니며 미래를 준비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인이 돼서도 매서운 러시아의 겨울추위를 따뜻했던 기억으로 견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민감한 시기에 소년병으로 끌려가 힘을 다 써버리면 미리 꽃을 피워낸 벚나무처럼 어른이 되어서 꽃을 피우지 못할까 가엾습니다.

어릴 때 엄마 없이 고생하며 자란 나는 일본에 와서 혹독한 겨울이 무척 추웠습니다. 벌벌 떨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나도 겨울은 여전히 추웠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내를 만난 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일본의 겨울은 달랐습니다. 같은 땅인데도 체감온도가 달랐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욕조에 물을 데워놓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내와 함께 나는 코타츠에서 아내와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참 따뜻한 겨울입니다.

오늘은 러시아의 청소년들과 이스라엘 전쟁터 젊은이들의 겨울나기를 위한 기도를 더 뜨겁게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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