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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의 낮은 목소리>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데 선거 때가 되면 어느 나라든 정치적 폭력이 난무하여 꽃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인 미국도 선거 때를 기해 굵직굵직한 사건부터 시작해서 몇 년 전에는 극우세력의 연방의사당 난입사태까지 일어나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한국도 선거 때마다 아슬아슬 작고 큰 사건들이 다반사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선거의 회오리바람이 인다. 불행한 일이다.

한국은 이번 총선거를 거치는 동안도 심각한 병리현상이 난무했고 반대자에 대한 설득과 타협대신 고소고발이 난무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메리엄은 정치의 폭력화는 ‘실정의 고백’이라고 했다. 정치세력이 그들의 정치역량의 한계에 달했을 때 폭력의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폭력화가 극에 달한 사건은 시간이 흘러도 회복은커녕 민심이 둘로 쪼개져 버리는 양산을 초래한다. 그래서 애꿎게도 선량한 시민들만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소통과 토론이 사라져가는 현대사회,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살벌한 사회, 이것 역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말살시켜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파시스트들은 서로를 용공세력이니 반역집단이니 하면서 선거를 저들의 메시지 퍼뜨리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슬픈 일이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각종 사회폭력을 양산하고 있는데 거기에 정치의 폭력화가 일상화 되어가니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절망하며 한숨만 높아간다. 이를 두고 정치학자들은 새로운 파시즘의 등장을 우려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났던 극단적인 전체주의가 가져온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반대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은 그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4,19혁명도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학생혁명이었다. 나는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의분에 차서 당시의 기사와 사진을 취합하고 설명과 소견을 곁들여 ‘아, 그날!’이라는 스크랩북을 만들어 보관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20년 4.19혁명 60주년 기념일에 한국에 가서 해당기관에 기증을 하고 돌아왔다. 지금도 4.19혁명기념관 2층에 전시되고 있으니 보람도 자부심도 느낀다.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백성은 그것을 반복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내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폭력이 없는 세상,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정신으로 차분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성경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라고 하셨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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