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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의 낮은 목소리> 파이팅! 여름단기선교!

Updated: Jun 13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이때쯤이면 거의 모든 교회들이 단기선교계획을 발표한다. 그러면 여름이 온 걸 안다. 1년 내내 자기 식구만으로 성령충만을 외쳐오던 교회들도 모처럼 밖으로 눈을 돌리는 계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뜨거운 선교열정은 한인교회의 획기적 사건이고 세계적인 감동이다. 팬데믹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또다시 ‘땅끝까지’를 내다보며 해외선교와 선교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참 감사하다.

외국선교사의 도움으로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받아드렸던 우리가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한국에 있는 교회들은 물론, 미국내 한인교회들도 다방면으로 선교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 미주에 거주하는 장로로서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선교는 아니었지만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방학을 이용한 농어촌계몽활동이 지금의 단기선교처럼 유행했었다. 나도 동아리회원 5명과 겨울방학 때 전라남도 진도로 농촌계몽활동을 나갔었다.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찾아가 몇 시간 동안 교육을 받고 장소를 지정받은 뒤 약간의 여비를 보조받아 며칠간의 봉사를 하는 일정이었다.

5명의 일행은 교육받은 내용을 서로 분담했다. 겨울철농가 부업돕기, 부엌개량해주기, 취학장려하기, 산아제한 강의하기 등의 일이었다. 새파란 풋내기들이 면사무소 회당에 모인 100여명의 주민들에게 산아제한을 강의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일이다.

지금은 한 가정에 1명도 아닌 0.76명의 자녀를 낳는 저출산 시대여서 출산을 장려하느라 정부의 고심이 깊은데, 그때는 정부에서 ‘2명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를 내걸고 ‘산아제한’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으니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하여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의 기억은 오직 한 가지, 다리도 놓여지지 않았던 시절, 목포에서 진도까지 배를 타고 오가며 동백꽃이 아름답던 진도를 여행했다는 추억뿐이다.

 

물론 오래전 내가 경험한 농촌계몽활동과 지금의 단기선교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다만 시행착오 면에서는 모두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도 통하지 않는 학생들과 어른들이 경쟁적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현지인 모아놓고 찬송 부르고, 이발 해주고, 학용품과 약품 몇 가지 선물로 주고, 훌쩍 떠나버리는 일이 현지 선교에 크게 도움이 안 되고 그 뒷바라지와 뒷수습으로 힘이 든다는 사실이 선교사들의 후일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또래의 선교사 자녀들한테 위화감과 상처를 입히는 경우는 정말로 지양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전문적인 선교형태는 따를 수 없더라도 최소한 선교지역의 필요가 무엇인지, 현지인들과의 언어소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준비는 물론, 쓸데없는 우월감이나 영어연수를 하고 오려는 속셈은 아예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여행금지지역으로 정해진 무슬림 지역이나 치안불안지역은 선교지역에서 배제해야 한다. 모쪼록 올여름은 단기선교든 장기선교든 파송선교든 모두 주와 함께 승리하기를 기도후원자로서 열심히 기도와 박수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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