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의 인터넷 세상> 풍류와 낭만과 현대가 춤추는 골목
- 하베스트

- Aug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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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화무쌍한 세상이니 같은 한국 하늘밑에 살아도 사실상 남의 동네일은 잘 모른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인사동이 완전 딴 세상으로 변했다는 소식을 익히 아는 터, 오늘은 친구를 불러내서 직접 추억의 골목길을 더듬으려 작정하고 나섰다.
옛날, 우리는 인사동 초입의 유명 골동품가게들을 제치고 좁은 골목 촌스런 찻집으로 기어들어가 시를 읊고 시낭송을 하고 원고를 뒤적이며 무지 행복했었다. 그러다가 지갑을 털어 골목끝 할머니 단팥죽집에 들러 단팥죽 한 그릇을 먹고 나면 그날은 ‘oh! thank you, oh! happy’였다.
그런데 오늘 막상 인사동 골목을 들어서며 깜짝 놀란 것은 낯설고 생소한 대형식당들로 변해버린 간판들 앞에서 갑자기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아니 우선 젊음이 북적대는 거리로 변했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답이다.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은 외국인관광객들이 홀딱 반한 곳이라더니 역시 쌈직한 액세서리부터 굽이굽이 골목골목마다 없는 게 없는 그야말로 풍류와 낭만과 현대가 공존하며 춤추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웅성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푹푹 찌는 무더위를 뚫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어디서 저런 힘들이 나올까? 역시 세계 유명연예인들과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멋쟁이도 다녀갔다는 곳답다. 가끔 대머리를 감추려고 모자를 눌러 쓴 왕년의 문학도들과 가짜같은 허술한 차림의 진짜 예술인들이 뒤엉켜 숨 쉬고 있는 모습이 차라리 정겹게 보인다.
그들이야말로 날고뛰는 New 시대에서 ‘낭만’이란 이름을 걸고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Old 신사들이고, 옛 골동품, 표구, 고서, 화랑들을 잡아두려 애쓰고 있는 진짜배기들이다. 그들 덕분에 구한말부터 70년대까지 만들어져 굴러가는 글쟁이와 그림쟁이들의 안주처 인사동 문화의거리가 생명을 부지했다.
인사동의 고유한 문화적 색깔이 지워질 것 같은 염려를 안고, 한옥을 고쳐 카페를 만들고, 수십 년째 한식당, 자기 이름을 걸고 또 다른 예술가로의 삶을 사는 귀하디귀한 분들도 있다. 그분들의 숭고한 뜻 앞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소문대로 인사동 골목은 과거와 현대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안국동 교차로부터 종로2가에 이르는 큰길은 아침부터 밤까지 나들이객들이 점령을 한다.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판도 나붙었다.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이 주종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루 100여대의 관광버스가 들락거린다한다. 가히 이제 인사동 골목은 대한민국 관광의 효도골목이다.
예술과 인생과 철학을 논하다가 한끝 차이로 서로 멱살을 잡고 치고받고 싸우고, 어린애처럼 다시 어깨동무하고 손잡고 돌아가던 시골 장터 같은 푸근한 인사동 골목. 이제는 시간대에 따라 현대의 옷을 갈아입고 관광객을 맞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곳. 사그러지는 추억이 아쉽고, 사라지는 역사가 아깝다. 그러나 과거 100년을 살아왔듯 또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나는 내 나름의 인증샷을 찍고 인사동 골목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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