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목사의 강단뒤의 고민> 용량미달

65세 은퇴당시의 암담했던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우선 앞이 캄캄해졌다는 것, 비축한 현금이 너무 없다는 것, 어느새 이렇게 늙었구나 등의 생각들이 주줄줄 머리에 차올랐다. 불안했다. 옆에 있는 아내가 가장 만만해서 아내를 불러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이 들면 다시 한 번 선교지로 나가서 현지선교사로 뛰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자고 협박조로 떼를 썼다. 선교지는 우리의 첫 번 선교지였던 태국으로 하자고 하였다. 아내는 뜬금없는 소리라며 “아직 ‘광야’를 운영해야 하고, 선교비도 전무하니 지금은 기도의 시간”이라했다.
천만번 지당한 말이지만 이미 내 마음은 들떠서 태국의 ‘쎈딴’일본백화점, ‘딸랏차오’새벽시장, 전에 살던 ‘수쿰빗’거리로 날라 다녔다. 그리고 100M마다 늘어선 휘황찬란한 절간들, 관공서입구를 장식한 신주단지 ‘팜프라폼 불상’들이 눈에 어른거려왔다.
지극히 행동파인 나는 지극히 앞뒤 재며 기도해 본다는 아내를 설득, 결국 미국을 떠났다. 그리고 태국과 한국을 7년간 오가며 말년의 꿈을 이루다가 70이 넘은 나이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83세! 다시금 곰곰이 지난날을 생각해본다.
빼곡하게 쌓인 450sf 넓은 서재의 책들, 한권 두 권 사서 모았던 원서들, 아내가 사준 으리으리한 유리문 책장들, 숲속 수양관 같다며 좋아하던 대궐 같은 집, 힘들게 공부하여 얻은 석박사 타이틀, 명예. 그것들이 내 인생의 수많은 세월을 쏟아 부울 만큼 중요한 것이었을까? 아니, 그것들을 다 포기할 만큼 65세 은퇴당시의 심정이 정녕 불붙는 선교열정이었을까?
아니다. 뒤돌아보니 변변한 열매하나 제대로 없고, 그저 동분서주 뛰어다닌 선교열정, 애써 키운 양떼들, 원근각처 제자들, 무척 요란하게 살았으나 건질 것은 없었다. 용량미달이었다. 책속에 파묻혀 학자와 교수로 살다가 마지막엔 책을 집필하는 남편을 상상하며 살았다는 아내의 바램도 완전 어긋났다. 한심스럽다.
일본잡지 프레지던트의 발표라며 노후 시니어들의 삶의 질은 경제력이 좌우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현금 흐름이 끊어져 제약이 생기면 노인들은 삶의 기본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취미활동, 건강관리, 지인교류 등은 그 다음이란다. 그리고 이구동성 ‘걷기’를 추천한다.
돈이 많아도, 명예가 있어도, 나이가 들면 모두가 건강에 초점이 맞춰지고 같아진다는 지론이었다. “걸으면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이 왕성하게 분비되어 면역력이 높아지고 근력이 생겨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유명교수의 결론이 초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심장수술 후유증인지 왼쪽 종아리가 땡기고 아파서 걷기운동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대로 내 인생 끝나려는가 마음이 요동칠 때가 많다. 결국 열매의 저울, 믿음의 저울, 사역의 저울, 그리고 건강의 저울까지 모두 미달인 셈이다. 피식 웃음이 난다. ‘프하~하~’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왜 웃음이 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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