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학교는 집에서 20분쯤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아침 등굣길에는 딴 짓할 여유가 없다. 지각하면 큰일이니까. 오르막길에 들어서서 넓은 학교운동장이 보이면 속이 시원했다. 하굣길은 여유롭다. 동네 친구들과 새로운 골목길 찾는 놀이를 하며간다. 이 놀이는 우리들이 개발한 놀이다.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두 팀을 만들어 새로운 길을 찾아내 지도를 그리며 가는 것이다. 오래 걸려도 괜찮다. 지각 걱정이 없으니까.
가는 길에 ‘개조심’이라 쓴 대문이나 특정한 장소는 알기 쉽게 표식해 둔다. 다음 날은 서로 지도를 교환해서 집으로 가면서 어제 다른 팀이 놓고 온 표식을 가져오는 게 미션이다. 한동안 우리는 이 놀이에 푹 빠져 지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골목과 골목은 연결되어 있고 막다른 골목은 항상 언덕 끝에 있기 때문이다. 언덕 끝 꼭대기에서는 남산타워도 보였다.
태어나서 계속 서울에 살다보니 서울이 자꾸 변해가는 게 보인다. 동네 한쪽으로 복개천이 흘렀다는 말은 전설이 되고 정겨운 골목은 사라졌다. 내가 지금 주로 다니는 목동단지는 골목이 없다. 학교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으니 아이들이 집으로 오는 길은 뻔하다. 아이들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랑삼아 하면 자기들도 집으로 오는 길이 몇 개 있다고 우긴다. 그럼 뭐 하냐~ 그 길이 그 길이라 뻔하고 재미없잖아~~ 곧 아이들은 골목길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지나가다 보니 넒은 양천공원이 지금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조감도를 보니 공원가운데 연못이 떡하니 들어앉는다. 이건 또 뭐냐~~ 이전엔 넓은 공터라 농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맘껏 뛰어 놀 수 있어 좋았는데. 공원을 걸어가다 아는 녀석들이 농구를 하고 있으면 자동판매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나누어 주는 맛도 좋았고, 넓은 공터에서 이런저런 행사도 하여 좋았는데. 아니 앞이 탁 트인 공터를 그냥 스치기만 해도 좋았는데.
도대체 왜 고친다는 건지 답답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체육수업도 거의 체육관에서 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공간마저 없애버리면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 수 있는 기회는 다 사라지는 거다.
아파트에 사는 한광이가 주택에 사는 친구 둥치네 놀러가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둥치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께 둥치네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리고 쑥개떡을 하나 받았다. “이게 뭔지 알아맞혀 볼래?” 쑥개떡을 처음 보는 한광이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슬기는 불량 찰흙이라 하고, 시내는 동물의 똥이라 놀린다. 다행히 골목에서 만난 할아버지 덕분에 ‘모양 안 보고 만들어서 개떡이고 쑥까지 넣었으니 귀한 쑥개떡’인 걸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많이 먹게 되니 쑥개떡을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골목길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늘 소유하던 귀중한 물건 하나 잃은 것처럼 왠지 씁쓸하고 허전하다. 꼬불꼬불 나의 추억속 골목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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