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할머니께서 심부름시키기에 제일 만만한 아이였다. 두 오빠는 심부름을 안 했다. 절대로. 동생들은 어리니 심부름은 전부 내 몫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대고모 할머니가 사셨고 결혼한 고모들도 가까이 사셨으니 꼭 특별하고 귀한 음식이 아니어도 서로서로 나눠먹느라 들고 나르기 바빴다.
심부름 가는 게 싫어 투정도 곧잘 부렸는데 그래도 길을 나섰던 걸 보면 나를 달래어 심부름을 보내시는 할머니의 수완이 좋으셨던 게 분명하다. 가도 그냥 가는 게 아니다. 무슨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인사하는 것과 찾아간 이유도 잘 말하는지 미리 연습을 시키셨다.
“고녀석 야무지네-” “인사성 바르고 심부름도 잘 하네-” 할머니식 예행연습 덕분에 때마다 어른들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 순전히 할머니식 가정교육 덕분이었다.
할머니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맘에 드는 치마가 있었다. 연한 살구색이었는데 허리에 주름을 많이 넣어 입고 한 바퀴 돌면 풍성하니 예뻤다. 특이하고 예쁘니 좋았다. 그래서 자주 입었다. 별명이 덜렁이었던 나는 이 치마를 입고 고무줄도 줄넘기도 거침없이 했다. 치마 속에 속바지를 받쳐 입으면 못할 게 없었다. 그러니 치마가 멀쩡할 리 없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입고 가려고 보니 치맛단이 풀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치마를 꼭 입고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꿰매 놓을 테니 내일 입어라 해도 고집을 부리니 할머니께서 서둘러 꿰매주셨는데 비슷한 색깔의 실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이불 꿰매는 허연 명주실로 꿰매시고 크레파스를 가져 오라시더니 허연 부분에 살구색 크레파스를 살살 칠하셨다.
“됐다. 하나도 안 보이지?” “창피하게. 크레파스 칠한 거 다 알겠어” “누가 거기만 쳐다보니? 안 본다. 어서 가” 더 투정 부렸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집을 나섰다. 내 눈은 자꾸 그쪽으로만 가는데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의 크레파스 아이디어는 완벽했다.
맞다. 그렇다. 자기만 신경 쓴다. 늘 입던 스타일이 아닌 옷을 입었을 때도, 머리 스타일을 바꿨을 때도 낯설고 신경 쓰인다. 솔직히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자꾸 내 눈에만 내가 낯설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면 결국 할머니식 처방이 특효다. -누가 너만 쳐다보냐- -누가 거기만 쳐다보냐-
지난겨울에 산 부츠를 꺼내보니 구두코가 벗겨져 있었다. 조심했어야 하는데 평소 습관대로 험하게 신었더니 몇 번 안 신었는데 앞부분이 허옇게 드러났다. 버리자니 아깝다싶었는데 할머니식 방법이 떠올랐다. 검정색 유성매직으로 허옇게 드러난 앞부분을 칠했다. 크크크~ 완벽했다. 올겨울 몇 번 잘 신고 떠나보내야겠다. 역시 아무도 거기만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할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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