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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Aging-아름답게 나이먹자> 남편의 박사가운

Writer's picture: 하베스트하베스트


남편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행사 때마다 입던 박사가운은 검정색에 빨강줄이 양팔과 어깨에 세 줄씩 새겨져 있고, 청색 후드가 앞뒤로 길게 늘어져 있는 제법 화려한 가운이다. 금색줄이 찰랑대는 사각모까지 한 세트인 남편의 그 가운을 나는 남편이 은퇴하고 10여년이 넘도록 버리질 못했다. 생활비보다 책값이 더 나갔고, 렌트비보다 훨씬 더 비쌌던 남편의 등록금을 십일조 다음으로 중히 여기며 살던 나에게 그건 보물이었다.

단출하게 살려고 값비싼 것들을 모두 없애면서도 참 오래도 끌어안고 있던 그 보물가운을 얼마 전, 어려운 신학생들에게 무료로 빌려주면 좋겠다싶어 기독교서점에 기증을 했다. 남편은 그날 무슨 장기기증이라도 한 듯 연실 뿌듯하다고 했다. 어차피 다 놓고 갈 건데 관속에 함께 넣은들 무슨 소용이며, 대대로 물려준들 무슨 의미인가. 나도 뿌듯했다. 잘 한 일이다. 살면서 버려야 할 것이 어디 한 두 가진가.

평생을 책과 씨름하며 살던 남편은 애지중지하던 수백 권의 책들도 버렸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은지 퍽 오래다. 그러면서 평상시 거들떠보지도 않고 푸대접하던 TV를 정자세로 공부하듯이 시청한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고 웃기기도 또 측은하기도 하여 회고록을 써보라고 유혹을 했으나 지금까지 허사다.

때가 차면 산모가 병원 분만실로 들어가고 신생아가 탯줄을 가르고 세상에 나오듯이 목사도 교수도 때가 차면 은퇴하는 건 당연하고, 법관도 경관도 제복을 벗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인간이기에 아쉽기도 하고, 인간이기에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하면서 점점 에고가 되어가는 것 또한 토를 달수 없는 자연스런 인간됨의 한계다.

나는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며 인간의 삶 끝자락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폐부로 느낀적이 있다. 나도 겪게 될 그 마지막 인간의 모습! 호스피스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삶에 맞닿아 있는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분들이 치르든 그 초연한 나잇값을 존경하며 감동했다.

호스피스교육이 끝나고 그룹을 지어 호스피스병실에 들어간 우리는 환자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한 사람이 아로마 발 맛사지를 해주는 동안, 한 사람이 환자에게 말을 걸어 복음을 전한다. 천국을 소개하고 자신만만하게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한다. 통증을 줄여서 인간성 회복과 존엄한 죽음을 맞도록 조치를 취하는 건 의사의 몫이다. 모두 한 사람을 위한 봉사팀이다.

밥 먹다가도 숟가락을 놓고 간다는 죽음, 환자와 의사와 봉사자와 성직자가 다함께 원하는 건 단 하나, 환자가 편히 가도록 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한다. 그래야 임종선언을 들으면서 ‘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를 그나마 삼는다. 화려한 박사가운이나 찬란했던 일터와 도서관 같은 서재가 무슨 대순가. 모두 놓고 갈 한 순간인 것을.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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