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으로 살기> 어머니의 매트
- 하베스트
- Jan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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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쓰던 예쁜 연두색 매트를 옆집 한국분이 가져가셨다. 어머니가 한국서부터 힘들게 싸들고 오신 크고 좋은 매트여서 좁은 집으로 이사 나오면서도 굳이 끌고 온 매트다. 그런데 때마다 “차다, 두껍다, 크다” 남편의 투정에 밀려 오늘 치우게 되었다.
내친김에 새해맞이 대청소라는 명목을 붙여 손질이 어려운 옷이며 무거운 프라이팬, 무거운 그릇들을 구석구석 뒤져서 버리고 털고 닦아내었다. 헌 접시는 화병받침으로 쓰려고 밖에 내놓고, 컴퓨터에 들어있던 묵은 원고들은 몽땅 쓰레기통에 넣어 지워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간간이 해오던 내 나름의 죽음의 준비를 오늘은 꽤 많이 해치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추억할 물건이 이젠 하나도 없다. 어머니 필체가 담긴 성경책은 남편 수술 때 병원에서 분실했고, 어머니가 해주신 결혼반지는 유학준비 한다며 일찌감치 남편이 가져가 없애고, 어머니가 마지막 미국여행 때 주신 어머니의 십자가목걸이와 수정반지는 집안의 장유유서와 화해를 위해 맏며느리와 막내며느리에게 주시라며 돌려드렸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올해로 22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정 때문인지, 어머니와 얽힌 에피소드 때문인지 우리 부부는 지금도 어머니 얘기로 꽃피울 때가 많다. 결혼초에 적어주신 가족들 생일날짜에 정확히 어머니와 내 생일이 음력 정월달 같은 날짜였고,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11월 20일은 정확히 내 호적상의 생일날과 같은 날이었다.
“여자는 정초엔 나돌아 다니는 것도 피하고 정월생일도 피하는 법”이라는 우리 부모님의 유교고집으로 나의 정월생일이 두 달 앞당겨져 가짜날짜로 호적생일이 정해졌고, 그날 마침 ‘어머니의 추도일’이 되면서 나는 젊어서는 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려드리면서, 나이 들어서는 어머니 기일에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생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젠 세월이 흘러, 두 달 전엔 호적생일이, 다음달 설날이 지나면 곧바로 3월엔 나의 음력 진짜생일이 닥친다. 아니 음력양력, 가짜진짜 이젠 얼마든지 생일파티를 벌여도 누가 뭐라하지도 않고 만사 OK다.
그러나 지금은 내 자신이 시들해졌다. 평생 단 한 번도 부인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는 남편의 무심함도 이젠 서운하지 않고, 부모의 금혼식을 홀라당 그냥 넘긴 아들며느리에게도 이젠 서운치 않다. 나이 탓이다.
이젠 눈을 뜨면 만나는 찬란한 태양빛이 좋고, 매일 보는 잔디와 푸르런 화분의 꽃들이 생명력이 있어 좋다. 소중한 것들이 달라진 것이다. 순전히 나이 때문이리라. 그렇다. 매달 어머니의 가계부를 체크하며 낭비한다며 어머니를 아프게 했던 젊었을적 자신을 눈물을 뚝뚝 흘리며 후회하는 남편의 모습도 순전히 나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동안 냉혈심장이라고, 정 없고 눈물 없는 차가운 이북사람이라고, 남편을 핀잔했던 내가 남편의 눈물바람을 보는데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별’이 턱밑까지 와있다고 느껴서일까. 아이러니다. 묘한 인간이다. ‘인생무상’이란 단어가 뼛속 깊이 사무친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