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being으로 살기> ‘감사’라는 두 글자
- 하베스트

- 24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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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이 많은 사람도, 말이 많은 분위기도 딱 질색이다. 그래서 요즘 아무말 대잔치마당이 된 국회의사당도, 의원양반들도 정말 딱 질색이다. 그래도 점점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소리가 자꾸 들려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간다.
사람은 사랑이 있어야 얼굴에서 빛이 나고, 교양이 있어야 행위에서 윤기가 흐르는 법인데 날마다 말잔치만 벌이는 그들에게 존경이나 희망의 빛을 찾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민들은 지금이 추수의 계절이고 나눔과 베풂의 계절이니 그동안 추수한 수확물을 내놓으라 하는데, 정작 그들은 ‘텅 빈손’ ‘0점’ ‘마이너스’라니 어쩌자는 것인가? 어쩌라는 것인가?
추수는 땀 흘린 자들이 느끼는 짜릿한 행복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여의도 시장엔 추수꾼의 희열은 없다. ‘베풂’은 축복이며 선행과 닿아있다. 선행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고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냥 ‘한 냥’ 집어주면 받는 이는 ‘동냥’이라 한다. 국민들은 동냥을 바라지 않는다.
올해 국회는 무엇을 거뒀는가? 정부는 무엇을 수확했는가? 과오를 뭉갠 이들은 무엇을 했는가? 정치를 낭비한 이들은 무얼 했는가? 어리석고, 포악한 감옥 안의 사람들은 그간 무얼 했는가? 그들 무리에 소속된 감옥밖 사람들은 무얼 했는가? 왜 계엄와중에 말릴 염도 못 냈는가? 나라를 사랑하기나 하는 건가?
한동안 바닷가 유리병속에서 발견된 ‘사랑의 쪽지’가 무슨 신기한 신화처럼 지구촌에 퍼졌었다. 장장 13년의 긴 세월을 유리병 속에 담겨져 바닷물을 헤엄쳐 다니던 ‘love leter’는 삭막한 세상에서 충분한 화제꺼리였다. 캐나다 동쪽 끝에서 아일랜드 해안까지 유리병이 떠내려가서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지금은 세 자녀를 둔 중년의 부부로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 ‘기적’같이 귀해서이다. 그런 기적이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게도 와주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세계 도처에 이런 기적 같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주님의 긍휼하신 사랑을 기도한다. 아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주님의 긍휼을 기도한다. 알게 모르게 계엄의 나라라고 우리를 따돌림 하는 나라들에게도, 동정하는 척 우리를 무시하는 나라들에게도, 연민이든, 이웃사촌의 정이든 미국, 유럽, 유엔, 아시아권 일본까지 주님의 긍휼을 기도한다.
우리는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제발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세워지기를 응원해주기를 부탁한다. 기필코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들고 세계 유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추수감사’의 찬양이 국회앞마당에서 울려 퍼지는 나라가 되게 해주소서.
우리가 선교하던 이름 없는 국경지 오지에서 산기슭에 터를 잡고 추수해 거둔 잡곡을 하나님께 드리며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던 이들이 생각난다. 하나님의 사랑을 찬미하며 드리던 그들의 최상의 감사축제! 제발 우리도 올해부터는 가슴 밑바닥에서 터지는 ‘주님사랑’을 고백하는 최상의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소원한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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