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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섭의 콩트세계> 새처럼 바람처럼



희야는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하늘이 높고 맑다. 그런데 희야는 힘도 없고 의욕도 없다. 그래선지 청명한 하늘이 예없이 슬퍼 보인다. 그때 푸드득 새장 속에서 모이를 먹는 새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입부리로 연신 톡톡 모이를 쪼아대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러다가 물 한 모금 먹고, 위를 한번 올려다보는 여유도 부린다.

모이 한번 먹고 위를 한번 쳐다보고, 물 한 모금 먹고 위를 한번 쳐다보고, 도대체 저놈들은 무슨 기운이 차고 넘쳐서 저렇게 요란을 떠는지. 희야는 끝도 없이 반복하는 새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가만히 새장 문을 연다. 새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새들은 열려진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 여전히 먹고 마시고 똑같은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날아가라고 손짓을 해도 새들은 날개만 쭈뼛거린다. 아예 날아갈 생각은 없는 것인가. 새장에 갇혀 살다가 창공을 날아다니는 방법을 잊어버렸는가. 희야는 있는 힘을 다해 새장을 흔들어 새들을 새장 밖으로 날려 보낸다. 새들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는지 희야 주위를 한 바퀴 빙글거리며 돌더니 휙 날아가 버렸다.

“새들아! 다시는 되돌아오지 말아라. 나도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희야는 아직 수술후유증의 축 늘어진 몸으로 간신히 지탱하고 서서 새들이 날아간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새들아, 니들이 내 마음을 알아?” 희야는 날아간 새들에게 말을 거는데 새들은 어느새 간 데 없고 옆집 여자가 어느 틈에 옆에 와서 말을 건넨다.

“오후에 커피 한잔 마시자구요” 희야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말갛게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둘레는 고요하고 이웃들은 여전히 웃고 떠든다. 신선한 바람에 온 몸을 맡긴 희야는 맑은 공기가 폐속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아 몇 번의 심호흡을 거듭한다.

수술 경과는 아주 좋다한다. 그러나 몸은 몹시도 힘들다한다. 어떻든 희야는 사람들 앞에서 유쾌한 척, 아주 괜찮은 척, 목소리까지 변조한다. 희야의 널브러진 모습과는 상관없다는 듯, 눈앞에는 익숙한 마을이 여전하고, 집이며 이웃들이며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밝은 태양은 여전히 찬란하고, 맑은 공기는 여전히 세상을 정화시킨다. 그러나 희야는 자기가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안다.

친구들은 항상 말했다. “네 어깨의 짐을 반이라도 내려놓으라. 병나겠다” 나도 깃털처럼 가볍게 살고 싶었다. ‘옛날로 돌아오라는 친구들아, 사랑하는 동역자들아, 이제는 나를 놓아다오’ 희야가 푸념을 하는 동안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철이가 오고 있었다. 항상 나에게 숨을 쉬게 만들어 주는 사람, 아플 때 기도로 밤을 밝히며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등불 같은 유일한 사람, 김철! 빛나는 아침햇살처럼 깊은 신앙의 예지로 나를 감싸고 이끌어주는 좋은 사람! 그가 있어 아직도 행복의 끈을 쥐고 있는 희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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