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아의 마음은 시리고 춥다. 엄마의 차가운 눈빛은 늘 경아를 어둡고 춥게 만든다. 무덤덤 착한 아버지는 지병으로 요즘 부쩍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경아의 집안은 늘 우울하다. 그렇지만 경아는 동생이 사랑스럽다. 누나로서 그를 위해 돈을 벌고 쓰는 것이 기쁘다. 엄마도 그 아이를 대할 때는 지구상 가장 자애로운 어머니로 변한다. 왜? 경아는 엄마의 이중성에 몸을 떤다. 내가 뭘 잘못했나? 전전긍긍 엄마 눈치 보느라 참 힘들다.
춥기만 했던 어릴 적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경아에게 철이가 다가와 옆에 앉는다. 우산에 물기를 털어 옆에 놓는 철이는 겨울비에 추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사랑은 추위도 겨울비도 이기는 법, 철이는 경아 옆에만 서면 항상 싱글벙글이다. “경아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있니?” “응, 나의 아픈 시절. 그때는 너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있었어”
경아는 철이가 버팀목이 돼주는 덕분에 알바를 하면서도 공부를 하며 동생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일생일대의 이변이 생겼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경아야, 너의 친엄마를 찾아 가거라”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모기소리만한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가 경아의 귀에는 천둥소리보다도 더 크게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경아야, 미안하다” 경아의 손에 쥐어준 친엄마의 전화번호. 영락없는 영화의 한 컷이다. 경아는 쥐고 있던 전화번호 쪽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 얼마를 울었을까? 경아가 버렸던 전화번호 쪽지는 경아의 손에서 책상서랍 깊은 곳에 넣어졌다. 늘 싸늘했던 엄마! 그는 새엄마였다. 아빠를 꼬여낸 내 동생의 엄마였다.
숙제가 풀렸다, 그러나 경아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작정하고 버텼다. 친구들은 벌써 졸업을 했지만 경아는 학비 때문에 졸업도 늦다. 친엄마와 외삼촌이 경아를 찾는다는 풍문이 들린 때도 그 무렵이다. 아차!? 그 전화번호? 경아는 서랍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전화번호를 꺼냈다. 이를 악물고 외면했던 친엄마의 연락처. 부들부들 떨렸다. “왜 날 버렸어요? 어떻게 자식을 버려요?” 경아는 친엄마의 존재에 미움인지 원망인지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했으면 말씀을 하셔야지요” 어머나~~ 경아는 전화선을 타고 들리는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가 친엄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자신도 모르게 다이알을 눌러 전화를 걸었던 경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전화를 끊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나의 엄마~~ 내 친엄마~~ 순간 핏줄이 당겨왔다.
다시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후, 경아는 졸업을 하고 드디어 친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경아에게 말씀해주셨다. 단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단 하루도 딸을 가슴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고, 늘 딸을 가슴에 품고 함께 살았노라고. 친엄마는 경아와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심장병으로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꿈같은 엄마와의 만남, 꿈같은 엄마의 따스한 품속, 꿈같은 엄마의 사랑!
경아는 홀로 남겨졌다. 그러나 경아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있었다. 온광로가 된 경아의 따듯한 손은 철이의 묵직한 손에 사랑으로 포개졌고, 천사표 신부로 변신하여 철이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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