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지. 그래도 어쩌겠어” 기자가 만난 어느 할머니의 추석은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이란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하지만 판자촌에 사는 할머니는 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느라 열리지 않는 대문만 바라보신단다. 그런 분들을 인터뷰하고 뒤돌아서서 나오는 기자는 마음이 아프다한다. 내 마음도 아프다.
혼자가 익숙해진 노숙자들의 추석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젊었을 때는 먹고 살기 힘들어도 추석에는 그래도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웠어”라는 어느 노숙자는 “자녀들은 타국으로 떠났고, 아내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이제는 행복했던 추억만 남았어”라며 외롭고 고달프단다.
“추석은 외로움이 배가 되는 쓸쓸한 하루입니다” 용산역 부근 움막촌에 기거하는 어느 분은 올해도 추석과일과 떡을 한아름 싸들고 싼타처럼 찾아와줄 사람을 기다린단다.
외롭고 고독하게 고생과 싸우며 자란 어느 한 청년은 추석이 오기 전에 서둘러 세상을 떠나버렸다. 5살부터 거리를 떠돌며 살았고, 청소년기엔 짜장면 배달을 하고, 다방에서 구두를 닦으며 클래식을 익혔다는 최성봉. 그의 기구한 삶이 방송을 타고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사랑과 기도와 염려로 온정을 베풀고 성악의 길도 터주었다.
그런데 클래식 정상에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던 그는 2021년, 대장암, 전립선암, 갑상선암, 갑상선저하증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라며 떠들썩하게 모금을 진행했다. 거짓이었다. 병원도, 환자복도, 암투병도 거짓이었다. 몸에 거짓이 배었을까? 그렇더라도 후회, 회개, 사과로 이어지면 좋았을 걸 지난 6월, 그는 자살로써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최성봉 청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의 어리석은 거짓말은 외로움에서 왔을까? 고독에서 왔을까? 비운의 성장과정에서 왔을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받은 은혜는 감사로 받으면 되고, 다시 이웃에 베풀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배우는 거다. 어쨌거나 자살은 살인행위이며 생명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주지 못한 죄스러움에 자꾸 마음이 무겁다.
우리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가곡 ‘비목’의 주인공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가사에 보니 주인공은 깊은 계곡 양지바른 곳에 묻혀있다. 번쩍이는 대리석 비석이 아닌, 강원도 화천군 공원, 나무비석에 녹슨 철모를 걸어둔 것이 그의 무덤이며 한국전쟁 당시 죽어간 무명용사의 돌무덤이라 전해진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했던가? 격전지에서 외롭게 죽어간 한 젊은이가 양지바른 비탈길 흙과 돌무더기에 묻혀있다. 세월의 녹이 쌓이고 썩은 나무등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으련만 뜨거운 전우애가 만들어준 나무비석 덕분이다. 그래서 지금도 애절한 ‘비목’의 주인공으로 노래로 불러지고 책으로 읽혀지고 있다. 훗날 후대에 훈훈한 주인공으로 모두들 남겨지길 기대하며.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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