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l Aging-아름답게 나이먹자>목사의 아내들


목사의 아내들은 사모가 된 사연부터가 참 재미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사랑 때문에, 남편이 목사로 변신하는 바람에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일단 목사의 아내가 되고나면 사모의 역할은 모두 똑같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사실 아직도 사모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다. 교회 전체를 사랑과 긍휼로 감싸는 어머니, 기도할 때는 여전도사처럼 능력 있게, 부엌일을 할 때는 또순이처럼 억세게, 교인들 앞에서는 없는 듯 조용하게… 억울하고 분하고 모욕을 당해도, 때론 일가친척이 더 큰 대못을 쳐도 입 다물고 승화시켜 넘겨야 한다.

치마 길이는 엉거주춤 무릎선, 바지는 평생 일자, 색깔은 튀지 않게, 싸구려 옷은 품위가 떨어지고 메이커는 질투심을 유발하니 요조심! 값진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고 나타나면 그날은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사모들은 사람조심, 말조심, 행동조심을 하면서 차츰 지쳐가고 심장과 혈관에 붉은 신호등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목사부인은 엄밀하게 따져서 집사도 전도사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때론 교사, 반주자, 성경지도자, 사건이 터졌을 때는 목사를 대신해 해결사도 된다. 아주 죽은 듯이 조용히 해결해야 하는 건 상식이다. 거기에다 교회에 시험이 들면 기도꾼으로 돌변해야 한다. 물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심적 고통을 내색해선 절대 안 된다.

그런데 사모에 관한한 그 어떤 자격기준이 없다. 대학을 나와도 좋고, 초등학교만 나와도 상관없다. 잘생겨도 못생겨도 무방하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나타나는 것, 없는 것 같은데 있는 것, 무시해도 될 법한데도 무시했다가는 교회가 들썩들썩할 정도의 대단한 존재다. 심지어 목사와 싸움하던 장로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공적인 존재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대단한 공인이다. 청와대 안주인 영부인처럼.

어떤 노인들은 목사를 자기 아들처럼 내복걱정 땀띠걱정까지 해준다. 그래서 사모는 며느리처럼 고분고분해야한다. 어떤 이는 마치 자기 남편처럼 이것 먹이고 저것 입히라고 사모에게 주문도 한다. 물론 모두 목사님을 위한다는 명목이다. 평상시 목사를 흠모하던 이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지만 눈치 백단의 사모는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준다. 남편을 가운데 두고 3류 마담으로 추하게 전락할까 두려워 목석같은 표정을 지으며 넘겨야 한다.

물론 남편에게도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고 못본 척, 못들은 척 한다. 어떤 때는 남편도 그들과 한편이 되기도 한다. 아내는 가족이고 교인은 섬겨야 한단다. 그럴 때는 남편도 타인이다. 목사를 상전 받들 듯 하는 그들에게 목사가 상감마마로 군림되는 건 시간문제다. 우쭐한 이 남자는 때론 왕같이 여유 있는 미소도 짓고, 인자한 표정으로 세상을 초월한 듯한 거룩의 얼굴을 하기도 한다. 단순한 남자니까.

그런데 이런게 이성문제로 돌변하여 순간적으로 목사의 허울이 무너진다는 것을 목사는 모른다. 순진한 남자니까. 그러나 분명한 건 사탄의 전술에 말려들었건 뭐건 간에 목사의 허울이 무너지면 그땐 하나님 앞에서의 목사의 사명은 접어야한다. 자격상실이니까.

그래서 목사의 아내는 인간적으로는 치사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 순진한 남자’를 지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일 또한 사명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심적 긴장과 상처, 스트레스, 또한 자신의 품위를 정립시켜 나가기 위한 부단한 자기 노력을 쉬지 않는다. 때론 사모의 사명이 희미해질 때도 있다. 그건 사모의 마지막 슬픔이다. 이런 문제는 외적갈등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가야만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 목사를 선택하실 때 그를 도울 배필도 선택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사모는 주의 종의 사명을 갖고 기도하고 몸부림친다. “주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기도의 골방에서 눈물로 오랜 씨름을 한다. 기도가 끝나면 마음은 홀가분해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사명의 멍에를 다시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골고다의 언덕을 오른다. 무직책의 숨은 존재! 그는 오늘도 이렇게 생존하여 가고 있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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