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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의 낮은 목소리> 엄마는 알고 자식은 모르는 일



어려서 기관지천식을 많이 앓던 나는 5남매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환절기에 때 없이 숨이 차오고 헉헉대면 어머니는 발작이 가라앉을 때까지 나를 업고 뜬눈으로 밤을 새셨고, 집에서 5마일이나 떨어진 중학교 다닐 때는 내가 개근상을 놓치면 안 된다고 하도 조르는 바람에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하는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랬던 어머니인데, 서울에서 치매로 앓고 계셨을 때 여러 차례 찾아가 뵙기는 했으나 한 번도 어머니를 업어드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3년을 누워계시는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뼈만 남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 문밖에 바람이라도 쏘여드리거나 가까운 음식점에 모시고 갈 수도 있었는데, 왜 나는 그런 생각도 못했을까.

 

피난시절 외할머니가 사시는 황간에 가있는 동안 할머니를 도와 두 마지기 벼농사를 지을 때도 농번기가 되면 다른 동생들은 학교를 못 가게 붙잡아 두시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가게 해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할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용현아 네 점심 싸가지고 왔다” 나는 부끄러워 어쩔줄을 몰랐다.

80년대 LA신문에 실렸던 기사 중, 토랜스에 사는 어느 어머니가 UC버클리에 들어간 아들이 보고 싶어 면회길에 나섰다. 학교운동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아들이 나타나자 손을 덥석 잡으며 LA올림픽떡집에서 사가지고 온 떡봉지를 꺼냈다. 그런데 이 아들, “엄마, 창피하게 이게 뭐야”라며 떡을 풀밭에 팽개쳤다. 가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할까?

이민가정에서는 바쁘게 사는 자식들을 위해 손주들을 봐주느라 허리가 굽도록 고생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런데 “다른 부모도 다 그러는데 뭐~” “노인네가 그런 낙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식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분노마저 일었다. 자식들은 부모의 마음을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른다. 요즘은 결혼을 안 하는 자식도 많고, 출산을 기피하는 자녀들도 많아 이제는 외로움의 차원을 지나 국가적, 인류사적으로도 문제이다.

 

지난해 봄, 서울을 방문하는 길에 피난지, 시골을 둘러 봤는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어 잡초만 가득했다. ‘한국이 소멸 되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노년에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지난여름, 우리 부부는 동부로 이사와 딸네 내외와 9살 난 외손자를 자주 만나며 지내고 있다. 아내는 딸네 도와주는 일이 마냥 기쁘고, 한글학교를 다니는 손자는 한글숙제는 할아버지가 도와주어야 좋다며 꼭 나를 찾는 게 흐뭇하다. 새해에는 애틀랜타의 아들네 집에 가 친손자들을 만나고 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자식들에게 얼마나 되돌려 줄 수가 있을까?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한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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