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말이 없던 그때 그 사람


“박희성 선교사님! 수고 많으시지요? 폐가 될 것 같아 미리 연락 안하고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인사드립니다.” 한국도자기 회장님이었다. 태국에 관광차 여행을 오셨는데 혹시라도 선교사에게 관광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돌아가는 날에야 인사를 하시는 거였다.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잊을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은 한 개인이 당시 총회차원 10여 개교회에서 후원하는 선교비만큼의 거액선교비를 매월 내시는 장로님이다. 그런데도 태국 현지선교사에게 부담주기를 피하려 애쓰시는 겸손은 곧 그분의 인격이었다.

당시 나는 교단에서 최초로 파송한 초대선교사로서 교회마다 우리 가족사진을 걸어놓고 기도하며 선교에 불이 붙기 시작하던 때였고, 우리 부부는 전심전력 불교국 불모지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열정의 젊은 시기였다.

선교지에서는 영혼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필요시 능력과 기사로써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실 때가 많다. 원두막처럼 바닷물위에 얼기설기 지어진 태국의 수상빈민촌 암환자에게도 그러셨다. 그에게 급하게 복음을 전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그땐 나도 마음이 급했다. 대장암 말기로 똑바로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환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선교사에게 기도를 받고 싶다하여 나는 아내와 함께 허물어져가는 노천수상집 2층으로 올라섰다.

등이 꼽추처럼 굽고 굳어져 엎드려 잠을 잔다는 환자가 뼈만 드러내고 있었다. 여러 자식들과 부인이 둘러앉아서 까울리(한국사람)를 구경하며 과연 아짠박(박목사님)이 믿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지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찬송을 부르고, 뜨겁게 통성기도를 하고, 말씀선포를 했다.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더운 나라, 비좁은 방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더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씻지도 못하고 가래에, 고름에, 침에 범벅이 된 환자에게서 풍기는 악취로 역겨움에 지쳐갔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를 일으켜 앉혀놓고 안수기도를 하니 움직이지도 못하던 환자는 앉고 눕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짠(목사님)을 부르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는 피고름을 말끔하게 씻고 예배드릴 채비를 하고 기다렸다. 또다시 부흥회가 시작되고, 옆에 사는 수상집사람들이 빼곡히 함께 둘러앉아 기뻐하며 며칠 몇날을 그렇게 보냈다. 환자는 점점 좋아져갔고 두 달이 지나서부터는 밖에 돌아다닐 정도로 좋아졌다. 물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겠다고 입으로 시인하고, 본인은 물론이고 친척들도 크리스천이 되었다. 불교의 나라에서 영혼구원을 위해 급하게 베푸신 기적이었다.

난민촌 뚱깡양으로 태국 청년들과 전도를 나갔을 때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눈뜬장님이 보게 된 것이다. 성경책을 보여주면서 색깔을 물었으나 ‘돌’이라고 하며 전혀 못 보던 젊은 청년이었다. 안수기도를 한 후에 다시 물으니 “붉은 색, 빨간 성경책”이라며 정확히 알아맞혔다.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도 더듬대지 않고 잘 찾아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 손을 대고 기도를 할 때 나는 이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알았다. 그의 눈에서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내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청년의 회개의 눈물은 마침내 그의 눈을 뜨게 만들었고 그에게 활기찬 새세상을 살게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아짠박! 똑짜이ㅡ 콥쿤캅!(박목사님, 놀랍고 감사합니다) 지금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하고 가슴이 뭉클하다. 실로 마을 전체가 복음을 받는 축복의 순간이었다.

말라리아 약을 먹어가며 산속에 사는 산족들을 찾아 전도하는 날이나, 한국식으로 만든 시라차기도원에서 한국식으로 무릎을 꿇고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하던 태국청년들은 쏭태오(1톤 트럭)를 타고 출발하는 순간부터 은혜충만이다. 그들 중 세 사람은 나중에 헌신하여 주의 종이 되는 꿈같은 일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선교지 곳곳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권능이 선포되며, 말없이 선교에 동참하는 제3 제4의 한국도자기 회장님 같은 참인격자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선교의 역사를 만들고 있으며, 일선에서 은퇴한 나는 요즘 그간 살아온 추억을 한 컷씩 꺼내 책으로 엮으면서 그 옛날 말없이 무한 점잖으셨던 그때 그 장로님의 나이를 넘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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