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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 은퇴목사


또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왔으나 은퇴목사는 변함없이 주일이면 평생의 습관대로 좋은 양복을 차려입고 들뜬 기분으로 교회로 달린다. 그러나 도착순간 관심밖 인물임을 실감한다. 교인들을 데리고 나가거나 두각이 나타난다는 죄명?으로 구역이나 소그룹, 심지어는 시니어파티에도 끼질 못한다.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이 늙은이야” 우파에 앙심을 품고 살던 좌파 평신도선교사라는 인간이 왜 선교지도 안가고 앉아 욕두문자를 퍼붓는지 늙은 우파목사인 나는 난생 처음 듣는 욕설에 심장이 쪼여들고 쪼개지듯 아팠다. 그래도 눈 깜빡할 사이에 ‘영’의 사람이 ‘육’의 사람이 될 수 없기에 꾹꾹 누르고 참다가 결국 심장병원으로 실려가 심장대수술을 받았다. 다시 살아난 나는 그제야 사탄의 전술전략이라 깨닫고 혀를 찼다.

얼마 전에는 ‘늙은 게 죄인가’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밥 한끼 사먹기도 어렵다”고 어느 노인이 한 인터뷰에 무슨 대한민국을 흔들만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젊은이들의 폭발적 댓글이 달린걸 보았다. 어쩌자는 것인가? 노인은 벙어리가 되라는 것인가?

무릎이 아파 병원을 가는 한 노인이 버스를 탔는데 ‘현금 없는 버스’를 운영한다고 하여 신용카드가 없는 노인은 다시 내려서 택시를 세운다. 그때 카카오택시를 신청했다는 사람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택시도 못 탄 노인은 목이 타서 물 한 잔을 사먹으려 하나 배워도 금방 까먹은 카오스키가 사람대신 주문을 받아서 그조차 포기했단다. 병원예약시간이 다급해진 노인은 지나가는 자가용을 세워 사정얘기를 하고 신세를 진다.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지폐돈 한 장이 놓였고 차주인이 마음이 착잡하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다양함과 늙어감의 수준에 맞춰 정부정책도 교회시책도 세심해져야 하지 않는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고령화시대에 나이듦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각, 에이지즘(Ageism·연령차별)은 정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은퇴목사나 다리 아픈 노인들은 삽시간에 짐이 되고 죄인으로 전락하니 정말로 비정상이다.

눈감고도 노련하게 손발을 움직이는 시니어 봉제사들도 많고, 깊은 연륜으로 일에 능숙한 시니어 숙련공들도 얼마든지 있다. 자살직전의 젊은이들을 살려내고 세워주는 시니어칼럼니스트들도 많고 많다. 현이 끊어진 하프를 쓰라는 게 아니다. 시니어들도 얼마든지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말이다.

은퇴자든 젊은이든 간에 이제는 눈에 안 보였던, 빠트렸던, 놓쳤던, 서로의 장점을 보자는 말이다. 젊은이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시니어들의 축척된 연륜과 지혜가 공유하면 환상의 공존의 시대가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은퇴목사인 나에게도 내 둘레에도 그리고 이 시대에 현존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필요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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