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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 옛날로 돌아오라



오래전 일이다. ‘이사유감’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던 아내가 43번까지 이사 다니던 숫자를 세다가 눈물이 쏟아져 글을 중단했노라 했다. 아니, 아예 책 한권 분량의 원고를 컴퓨터에서 송두리째 날려버렸다고 했다. 거의 완성단계라며 내게 몇 꼭지 원고를 읽어주기도 했었는데 그 많은걸 몽땅 삭제해 버렸다니 정신이 뻔뜩했다.

살아온 삶을 소재로 수필을 쓰자니 사실 6개월마다 이사를 다니고 이사한 집을 몰라서 남편인 내가 집엘 못 들어간 적도 있으니 상처로 남아있을 아내의 추억에 나는 정말 할 말 없는 남편이다. 목회를 할 때도 못되게 구는 교인꼴을 못 보는 내 성격 때문에 아내는 늘 마음 졸이며 살았고, 내가 공부를 할 때는 모든 과정을 마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하며 학부형으로 살았으니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아서 책 쓰기를 포기했다는 이유를 충분히 알만했다.

“네 와이프가 왜 우느냐?” 어느 대형매장에서 가죽의자가 딸린 책상과 책꽂이 세트, 그리고 4개의 고급 유리케이스 책꽂이를 특별주문 하던 아내는 어쩌면 생애 마지막 남편 책상을 사는 것 같다며 울었고, 유달리 정이 많은 아내에게 매장 안 미국인들은 박수를 치며 감동했다. 나는 각종 주석과 사전, 그리고 원서들을 사서 도서관처럼 꾸미고 장서를 세는 재미에 도취되기도 하며 좋은 집, 넓은 서재, 학위 등 성취의 만족에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내가 변했다. ‘순진했던 옛날로 돌아오라’고 나에게 호통을 친다. 아들도 ‘옛날엔 아빠를 제일 존경했다’며 그때로 돌아오라고 야단이다.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지자 나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지며 병이 날 것 같았다. 책을 덮어버렸다. IS, 동성애, 우파좌파 등 눈에 보이고 스파크가 튕기는 현실과 부딪치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과 동영상으로 각종 정보를 사람들에게 보내며 설득하고, 백악관이나 신문에 좌파 비판의 글을 보내며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현실참여의 짜릿함도 좋았고 살아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러다 극성좌파에게 난생처음 아주 극한 욕을 몇 번 먹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다 난데없이 심장에 문제가 생겨 심장대수술을 받는 지경이 되었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이 겹쳐 가족도 못 만나며 처절하고 외로운 병원생활에 울고 울었다.

그러나 휠체어를 끌어주는 며느리, 아들과 아내의 빈틈없는 관리와 보살핌은 결국 나를 살려냈고, 나는 유월절 체험을 하며 또다시 널따란 책상에 두 개의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 폭신한 소파에 앉아 회복을 이어가며 옛동료들도 만나고 조금씩 활동도 재개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아직도 나에게 옛날로 돌아오라며 옛날을 그리워한다. 나의 만족이 가족의 만족은 아니었다. 나의 성취감이 가족의 성취감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나 알고 모두가 아는 답, 환원!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내 책은 아직도 박스에 담긴 채 창고에 있고 나는 여전히 책을 펼쳐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불편하지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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