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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의 낮은 목소리> 뉴저지에서 만난 첫 눈   

Updated: Feb 15

  



눈 내리는 걸 볼 수 없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뉴저지로 이사를 한 뒤, 어린애처럼 첫 눈 내리는 날을 고대했는데 온난화 때문인지 지난달에서야 겨우 하얀 눈을 만났다. 첫 눈은 대개 초저녁에 내린다했던가. 어렸을 적 이웃 마을에 놀러갔다가 하얀 눈이 온 마을을 덮어서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집에 들어섰는데 어머니는 방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계셨다.

자식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저녁 내내 화롯불만 뒤적이셨는지 어머니의 화롯불은 애꿎게 하얀 재로 변해 있었고, 문밖에는 그보다 더 하얀 눈이 밤새 내렸다. ‘펄~ 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누구나 즐겨 부르던 이 동요를 작사한 이태선 선생의 고향에도 그때는 함박눈이 많이 내렸었나보다.

눈은 기다림이다. 첫 눈은 더욱 아련한 기다림이다. 헤어져 사는 사람들은 만날 날을 기다리고, 영주권을 신청한 사람들은 이민국의 소식을 기다리고, 겨울추위를 나는 사람들은 따듯한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찬들은 마라나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산다.

     

한국에 살 때 나는 방송국 PD로서 명사들의 추억담을 듣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문사 사주이며 후에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분을 출연자로 모신 적이 있었다. 그분은 첫눈 내리는 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덕수궁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내리다가 진눈개비로 바뀔 때가 문제였다는 것, 진눈개비 내리는 날은 돈화문 비원 앞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눈이 오다가 도중에 진눈개비로 바뀌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는 고백이다. 지금 생각하면 젊음의 낭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추억담이다.

인간사에 갈팡질팡이 어디 그뿐이랴! 서쪽으로 가는 게 옳은지 동쪽으로 가는 게 옳은지 향방의 판단이 안 설 때도 많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간구하던 때도 수없이 많았다.

     

밤새 뉴저지에 많은 눈이 내렸다. 날이 밝으면 나는 집 앞 숲길을 따라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뽀드득 뽀드득 하얀 눈 위를 걸어 보리라 잔뜩 마음 부풀어 잠을 설쳤다. 아뿔싸! 그런데 어느새 제설차 1대와 5명의 인부들이 들이닥쳐 트럭은 차도에, 인부들은 인도에 쉴 새 없이 염화칼슘을 뿌려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위급한 상황엔 어김없이 이웃에 사는 딸한테서 텍스트가 들어온다.

“아빠, 눈 오는 날은 꼼짝 말고 집에 계셔야 돼요” 뉴저지에서 첫 눈을 만난 설레임에 빠져 있는 아빠의 이팔청춘 심정이 안중에도 없는 딸의 잔소리는 어느새 나의 보호자로 군림해 내 앞에다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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