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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내가 만든 토네이도

한국이나 이민사회나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주동자들을 보면 교역자보다도 더 바쁘다. 작전도 세우고, 금품도 돌리고, 때론 교단의 높은 양반들에게 부탁도 하고, 음식접대는 기본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교인들에게 연판장을 돌리기도 한다. 그래서 때론 교역자가 쫓겨나기도 하고 교회가 사분오열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작전이 성공도 하고 불발이 되는 것도 봤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에 분란이 생기면 사탄은 춤추고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신다.

요즘 LA 한인교회 여러 곳에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는 기사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토네이도가 한번 몰아치면 교회도 나라도 가정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초가삼간도 불타 없어진다. 올해로 성역 50년인 내게도 불어 닥친 토네이도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교역자를 쫓아내기로 유명한 남미 브라질의 대형교회로 부임하면서 40대초 젊은 나이에 내게 큰 회오리바람이 닥쳤다. 한국에서도 교회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장사꾼 장로를 만나서 피하듯 남미로 간 건데 거기서도 연거푸 강타를 당한 것이다.

한국에서의 회오리바람은 신앙 좋은 사장을 찾아가 교회운영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수법으로 우리교회 이름을 팔아 돈을 벌어 챙기는 장로가 발단이 되었고, 브라질은 그곳 이민자들의 생활수단인 봉제업을 하는 교인들에게 비싼 사채놀이를 하는 집사가 장로추대를 받지 못한데서 발단된 토네이도였다.

교회를 회사 운영하듯 하는 몇몇 주동자들은 자기들 뜻을 안 따라주는 목사를 뜨내기 나그네는 떠나라고 하며 매해 목사를 갈아치우고, 이들에게 그동안 지친 젊은 집사들은 그간 쌓인 감정이 폭발해 삽시간에 패싸움으로 번졌다. 가톨릭국가인 브라질은 ‘브라질정부는 빠스돌(목사)을 보호한다’는 광고를 교회게시판에 붙여놓고 주일이면 목사인 나를 지키려 경찰이 파견을 나와 서있었다.

그때 심장쇼크로 응급실로 실려 간 30대 아내는 그 젊은 나이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심장병을 안고 살며, 어린 아들은 그때의 상처 때문인지 커가면서 절대로 목사는 안 되겠단다. 사실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은 아닌데 불의를 보면 의분에 차서 ‘욱’하며 바른말로 직진하기 때문에 피할 수도 있는 회오리바람을 목회하면서 두 번이나 맞닥뜨린 것이다.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가기도 하고 휘어져 갈 줄도 알아야 하건만 그게 생각과 달리 잘 안 된다. 누가 나의 이런 과격함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지금 생각하면 한 가정을 편안하게 이끌지 못한 나는 가장으로서도 턱없이 부족했고 목양을 맡은 목회자로서도 한없이 부족했다.

교회이름을 팔아먹는 장사꾼 장로를 혼내줘야 한다는 정의감은 율법적 나의 교만이었고, 가난한 교인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며 이민 때 함께 탄 비행기동창은 장로피택도 같이 받아야 한다던 집사들은 결국 ‘사랑’ 한술 더 먹여주면 끝날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왜 앞뒤 좌우를 넓게 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절대화된 교회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십자가사랑의 잣대로 품는 목회를 하면 될 일이었다. 교회란 ‘하나님의 사랑의 공동체’며 그래서 그 안에서 할 일이란 오직 ‘사랑’뿐인데 그 지극히 간단한 ‘사역’을 그때 나는 지키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그분들이 생각난다. 요즘은 그때 그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고 무척 그립다. 회오리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흩어진 올곧은 젊은 집사들과 묵묵히 기도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던 권사들도 모두모두 그립고 참 보고 싶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끝자락이다. 작년과 올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이드니 이리도 덧없는 세월인 것을 젊었을 땐 왜 몰랐을까?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세월이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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