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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 오타쿠 아니에요 


요즘 날씨가 푹푹 찝니다. 이런 무더위엔 서늘한 에어컨방에서 바둑을 두거나 그늘진 바닷가 나무밑에서 낚시를 즐기는 취미객들이 제격입니다. 건전한 취미생활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게 해줍니다. 내가 일본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도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조심해할 것은 취미생활로 일본의 파칭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파칭코는 마카오나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처럼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사행성 도박장입니다. 언어의 장벽 없이 몇 가지 룰만 알면 즐길 수 있는 파칭코는 한번 빠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게 번 돈을 허무하게 탕진하게 됩니다. 나도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파칭코장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그곳의 요란한 음악과 기계음으로 가득한 파칭코장은 내 마음에 거슬렸습니다. 그리고 파칭코에서 한번 돈을 따게 되면 쉽게 돈을 벌었다는 쾌감에 빠지게 된다는데 나에게는 다행히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혼전까지 나의 취미는 ‘건담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건담은 일본의 유명한 로봇 애니메이션 만화입니다. 어른이 무슨 로봇을 가지고 노느냐고 하겠지만 이것이 워낙 실제로봇처럼 정교해서 어른이 만들어도 몇 시간씩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일본어도 미숙하고 길 잃을까 무서워서 어디든 혼자 놀러가지도 못하던 그 시절에 모든 걸 잊고 홀로 연휴시간을 때우기 딱인 나의 취미거리였습니다. 지인들이 조립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로봇장난감을 많이 가진 부자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는데 커서 누리게 되니 좋았습니다. “혹시 당신 오타쿠인가요?” 장난처럼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오타쿠란 단어를 직역하면 ‘자택’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인 의미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너무 심취해서 밖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나는 로봇을 만드는 게 취미이긴 하지만 오타쿠는 아니에요” 나도 농담으로 답을 건넵니다. 오타쿠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사진이나 로봇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인데 우리 집에는 건담로봇이 없습니다. 나는 몇 시간을 소비하면서 로봇을 조립해서 로봇을 좋아하는 주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걸 받아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결혼후는 결혼전보다 더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오타쿠는 아닌데 나는 그냥 집이 가장 편합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닌데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나의 안식처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모처럼 쉬는 날, 취미를 찾아 밖으로 나가는 이웃 남편들을 들먹거리면서 집에 함께 있어주어 고맙다고 애교를 부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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