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ANC 온누리교회 목사님이 설교 때 ‘우상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도 학교 근무할 때 어느 절 사찰방에서 중1짜리 우리반 학생들에게 ‘우상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서 귀가 번뜩했다. 전교생이 가을소풍으로 간 절에서 장대비를 만난 때문이었다.
ㅡ옛날옛날에 아브라함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너희 나이또래 남자아이였어요.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마침 여기 보이는 불상들처럼 작고큰 부처를 돌로 만들어서 파는 우상장사였어요. 어느 날 밤에 이 아들은 뒤뜰에 있는 아버지의 작업실로 들어가서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돌부처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어요. 삽시간에 부처들은 모두 부서지고 말았어요. 시끄러운 소리에 아버지가 달려 나와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아들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냐?” “내가 보니까 큰부처가 작은 부처들을 이렇게 모두 때려 부숴버렸어요” “야, 이놈아, 돌덩이가 어떻게 다른 부처를 부숴버린단 말이냐?” “그러게요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도 우상장사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세요” 아브라함의 승리로 게임은 끝났어요ㅡ
나의 우상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시끌벅적 깔깔대고, 창밖에서 기물이 파손될까 살피던 중복을 입은 빡빡머리 할아버지는 엷게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해주신 ‘우상이야기’는 옛날에 나의 ‘우상이야기’와 클로즈업되어 내 귀에 화살같이 꽂혔다. 목사님이 나열하셨던 단 몇 줄의 우상목록, 자식, 사역, 재산 그건 콕찝어 ‘나의 우상목록’이었다. 절간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던 돌부처 우상이 아닌, 내 가슴속 평생의 기도제목이던 우상,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잠을 설쳐가며 날아간 재산이 아까워 눈물 훔쳤던 내 마음속 실질적인 우상목록을 오늘 말씀으로 딱 지적을 해주신 것이다.
어릴 때 작정한 헌신이든, 커서 목사가 되던 목회를 하든, 결혼 후 먼 길을 돌며 헤매든, 그건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었다. 그건 결국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해결하실 일이고, 아들 스스로가 안고지고 가야할 짐이었다. 주의 종이 될 걸 미리 염두에 두고, 어려울 거라 미리 염려하며, 엄마가 먹고살 걸 마련해주느라 건물을 사주고 집을 사준다는 착각은 정말로 착각이었다.
ㅡ그래서 박살을 내셨구나 하나님이ㅡ
비로소 느낀 하나님의 뜻! 더 이상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우상’이라 하시는데.
그동안 단 한 번도 전연 그것을 ‘우상’이라고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그건 우상’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콱 박혔다. “내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단호하게 앞으로 살아갈 결론까지 정해주셨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100일작정기도, 40일기도, 한 달기도, 10일기도. 두 끼 금식, 한 끼 금식. 하나님은 그간의 나의 기도를 모두 듣고 계셨고, 이미 한 단계씩 끌고 가고 계셨다. 우상은 깨지고, 숙제는 완성되고, 가슴속 체증은 뚫리고, 속속들이 시원했다. 가족들 건강을 치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감사다. 역시 완전하신 나의 주, 나의 치료자, 공의의 하나님,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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