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게 울리는 스마트폰 비상벨에 기겁을 한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지진의 나라 일본에 살면서 이젠 익숙해질 법도한데 워낙에 놀란 가슴이라서 그런지 번번이 깜짝깜짝합니다. 특히 직장에서 한참 바쁘게 일할 때 재난경고와 함께 여기저기서 스마트폰 경보소리가 울리면 갑자기 회사는 웅성웅성 전쟁터로 변합니다. 요란한 사이렌소리는 고막을 치고, 그 고막의 진동은 가슴을 쿵쿵쾅쾅 흔들어댑니다.
다행히 대부분 작은 흔들림 정도로 끝이 나고, 그때마다 안도의 숨을 쉬며 우리는 자리로 돌아가진 합니다만 이미 지진의 뜨거운 맛을 체험한 우리는 또 사실 가끔은 정말 위험한 지진이 올 때도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경각심을 상기시켜 비상벨을 진짜 ‘비상’으로 받아드리며 ‘이놈의 지진’ 합니다.
한가롭게 여름휴가를 보내던 얼마 전에도 마트에 쌀을 사러 갔던 아내의 당황한 목소리에 또 놀랐습니다. “마트에 쌀이 없어요. 쌀 코너가 텅 비었어요. 한 사람당 한 포대씩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해요” 나도 당황했습니다. 항상 쌀이 남아돌던 일본에 쌀이 없다고?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렸습니다. 지진재난 비상벨이 울릴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에이, 괜찮겠지’ ‘설마?’ ‘혹시?’ 걱정과 안도가 머릿속에서 바쁘게 교차합니다. 서둘러 구글에 들어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일본의 전국 마트마다 남아있는 쌀이 별로 없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추수기가 가까워오니 쌀부족 현상은 곧 해소될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 유독 일본에서 쌀이 부족해진 이유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는 부언설명이 떴습니다. 첫째는 유독 무더웠던 날씨와 유독 잦았던 태풍탓에 쌀의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이 상승하면서 면 종류와 빵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요부족이 생긴 탓이라 합니다.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리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현실이 뭔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각이 되었습니다. 기후온난화에 대한 말은 사실 오래전 일이고, 그런 경고성 뉴스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며 나는 상관없는 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우리 턱밑을 치밀고 들이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폭염과 태풍과 자연파괴, 환경오염, 이것들이 ‘위기’라 외치며 지금 코앞에서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 실감납니다. 그야말로 코앞에 위기입니다. 처음에 깜짝 놀란 우크라이나 전쟁도 세월속에 점점 묻혀가고, 이스라엘의 전쟁도 또 역시 그러할 것이니, 무뎌져가는 우리의 감정과 어떤 심각함에도 둔해져가는 우리의 감각이 문제입니다.
꽉꽉 채워져 있어 별로 감사조차 느끼지 못한 텅 빈 마켓의 쌀 진열대 앞에서 오늘은 간사하게도 비로소 자연재해와 전쟁의 현실까지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오늘부터는 정말 눈앞에 펼쳐진 하루, 한 시간까지 소중히 움켜쥐고 넓고 멀리 바라보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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