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 되니 작년가을, ANC 온누리교회에서 열렸던 한인교회 발달장애컨퍼런스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오른다. 가을-장애인-음악연주로 그려진 내 머릿속의 그림! 나는 그날 장애인들의 악기연주를 보면서 그들의 성공을 뜨겁게 눈물로 간구 했었다. 아니, 그 후로도 그들은 가끔씩 나를 끌고 다니며 나의 감정을 수시로 자극하곤 했다. 심지어 혹시 나에게도 장애자식이 태어나 저 아픔이 주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갖고 있던 현금을 통통 털어 그들에게 간식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금일봉을 준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한 어머니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연주석 장애아들의 옆에 딱 달라붙어 숨듯이 앉은 엄마가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을 대신하여 열심히 첼로줄을 당기며 연주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엄마에게 자기의 손을 맡기고는 시종일관 위층 아래층의 청중들을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무대 윗줄에도 등치큰 아들 뒤에 숨어서 아들의 손으로 악기연주를 하는 또 한분의 손이 보였다.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의 악기를 켜는 그 손들! 나는 안 봐야할 걸 보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떨렸다. 그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아들이 장애를 딛고 좋은 연주가가 되는 것,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자식의 성공이다. 시종일관 뻣뻣, 무감정, 무표정의 아들이건만 그 부모는 그 아들을 첼리스트로 키우고 싶다.
-어린 장애딸의 뒤에서 지지대에 앉은 딸의 키에 맞추느라 무릎을 꿇고 앉은 엄마가 딸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5년 뒤, 딸은 훌쩍 커서 이번엔 지지대 없이 무대에 올랐다. 엄마만큼 덩치가 커버린 딸의 뒤에는 여전히 딸을 부축한 엄마가 서 있다. 장애를 가진 딸의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엄마는 고개를 숙인채 이번에도 딸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연예인 이경규씨가 언론에 알려왔다는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SNS에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뭉클한 모성애에 댓글로 응원했다. “어머님의 무릎이 너무 값집니다” “엄마인 나는 웁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 악물고 애쓰셨을지” 장애인 딸을 지키며 오롯이 딸이 무대에서 주목받게 되는 것, 딸의 키에 맞추려 무릎을 꿇고 딸의 등을 받치며 함께 끝까지 노래를 부른 엄마의 소원은 딸이 가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모성애라는 단어로는 형언이 안 되는 엄마의 100퍼 자식사랑!
90세에 돌아가신 우리 엄마는 혹한겨울에 장례를 치르려면 자식들이 고생한다며 굳이 봄꽃 만발한 따듯한 봄날에 가시겠다더니, 정말로 개나리꽃 만발한 4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물거리는 의식 한줄기 속에서도 자식사랑밖에 없으신 부모의 사랑은 글자그대로 가없으시다.
인간의 사랑법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이시다. 인간을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분, 수십만 불 재산을 다 까먹게 만들어서라도 결국 제자리로 끌고 가시는 분, 멀리 헤매고 다니거나 곁길로 도망쳐 다닐지라도 끝내 인내하며 끌고 당겨 기필코 사역을 맡기시는 분, 그분은 사랑의 본체이시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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