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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동전과 크리스마스와 빵나무


빵나무에서 빵이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농사를 안지어도 되고, 돈을 안 벌어도 되고,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도 없을 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빵나무를 만들지 않으셨을까? 답은 간단하다. 땀 흘리고 수고해서 먹고 살라는 게 하나님의 법칙이고 그것이 에덴동산을 쫓겨나면서 받은 인간의 숙명이다.

나는 가난하게 자라서 가난이 뭔지를 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살아봐서 배고픈 것이 어떤 것이지를 안다. 그래서 웬만하면 배고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LA에서 10번 프리웨이를 들어서는 입구에 나의 단골 흑인 홈레스가 있다. 그는 프리웨이에 들어서려고 대기 중인 자동차에 접근하여 유리창을 닦는척 하며 돈을 요구한다. 그에게 나는 단골손님이다. 아니, 나에게 그가 단골손님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가 안보이면 궁금하기까지 하고 만나면 동전을 한 움큼 건네주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오늘은 그에게 빵나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30대초에 교단 초대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태국으로 우리 부부는 은퇴 후, 30여년 만에 그곳을 또 찾았다. 젊어서처럼 교단 파송장도 받고 젊어서처럼 사명을 갖고 선교사로 간 것이다. 달라진 건 선교비를 자비량으로 하는 것뿐, 환경도 언어도 낯설지 않아 도착 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였다. 우리 부부는 내가 직접 만든 태국말 전도지를 들고 쎈딴(센트럴 인터네셔날 백화점)으로 전도를 나갔다. 엄청 큰 대형백화점 입구에 대형우상단지 2개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옆에 크리스마스트리가 각종 조명을 반사하며 캐럴과 함께 번쩍이고 있었다. 불교국이라서 크리스마스트리는 감히 상상도 못했는데 그간 장족의 발전이 된 셈이다.

아내는 미리 준비해간 태국동전 200불어치를 주머니 서너 개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프라 예수” “Merry Christmas”를 외치며 거리에 앉아 구걸하는 거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색다른 전도방법이었고 일단 호응이 무척 좋았다. “콥쿤카 콥쿤카” 두 손을 공손히 콧끝에 갖다 대며 전통인사법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그들을 보면서 역시 빵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직접 빵을 주는 것이 현명한 전도법이라는 걸 알았다.

2일이 지나도 환률 때문에 동전이 남았다. 역시 태국은 미국보다 빵도 싸고, 거지들도 순진하고, 사람냄새가 물씬 나서 퍽 정이 간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운 나라, 그리운 사람들이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가 되니 몇년 전, 그때의 태국동전의 추억이 떠올라 콧등이 찡하다. 가난한 태국사람들에게 빵나무에서 빵을 따먹을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절대로 내가 바라는바 그들에게 빵나무에서 주렁주렁 달린 빵을 따먹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약삭빠른 사람들이 재빠르게 사재기를 하거나 수거를 하거나간에 어수룩한 그들은 빵나무를 구경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시 하나님의 창조의 법도대로 빵나무는 아예 없어야 차라리 공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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