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독자글방> 예약전문 미장원
- 하베스트
- M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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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에 갔다가 예약을 안 해서 거절당했다는 SNS 사연에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걸 보았다. 맘 놓고 미장원도 못 다닌다는 우리 어머니의 푸념이 생각났다. 어머니날을 앞두고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미용실 예약을 해드리고는 이 글을 쓴다.
“예약을 안 했는데 머리 못하겠죠? 죄송해요” “전화로는 예약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인터넷은 할 줄 몰라서요” “그게 왜 사과할 일인가요?” 미안하다는 고객의 글도,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어느 착한 미용사의 글도, 거기에 달린 많은 댓글도 모두 읽어보았다. 남의일 같지 않다.
연예인처럼 거창한 머리손질도 아니고, 바쁜 직장인도 아닌데 굳이 날 잡아 예약을 하고 얽매여 사는 건 실상 너무 거추장스런 일이다. 맘 내키는 날, 동네 미용실에 들려 묵은 책을 뒤적이며 세상 돌아가는 수다도 떨며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먹을 것을 싸들고 가서 나눠먹는 것도, 때론 바쁜 사람에게 순서를 양보하는 것도 사람 사는 맛 아닌가.
인터넷예약필수, 온라인예약제, 맞춤예약전문. 생소한 미용실문화가 사람을 삭막하고 짜증나게 만든다. 손님이 없어서 쉬고 있는 미용실도 막상 들어가면 예약 없으면 안 된다고 문전박대 일쑤다. 동네 미용실에서 퇴짜 맞아서 이사한지 10년도 더 된 옛날 동네까지 간다는 분들도 많다. “젊은 나도 미용실 갔다가 예약 안했다고 두 번 퇴짜 맞고 집에서 혼자 머리 잘랐다” “예약 필요 없는 단골 미용실만 간다” “예약할 줄 몰라요” 퇴짜 맞는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미용실들이 자체적으로 너무 이상해졌어. 언제부턴가 지들끼리 선생님이니 디자이너니 팀장님이니 올려치더니, 이젠 커트를 시술이라고 하질 않나 손님도 없는데 예약 안했다고 예약하고 오래” 스스로 몸값 올리려는 처절한 미용사들의 몸부림에 뒷말이 수두룩하다. 정말로 웃긴다.
키오스크 주문, 현금 안 받는 버스, 카카오택시.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을까? 누군가는 현금을 쓸 수밖에 없고, 예약하는 것을 모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장사 안 된다면서 오는 손님 보내는 건 또 무슨 배짱일까? 가격은 갑자기 왜 그렇게 폭등했을까? 미용실 앞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수십 년 단골도 아예 발도 못 부치게 잘라버린다.
생일케익 하나 사려도 화면을 눌러 주문해야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얼굴이 화끈대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관공서도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일을 보란다. 겨우겨우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혀 일처리를 하고나면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며 다시 익혀야한다니 머리가 터진다.
팬데믹 이전엔 힘센 아줌마들이 이 나라의 주역이라며 치켜세우더니 지금은 IT시대라고 갑자기 구시대 꼰대 취급을 하니 참 떨떠름하다. <오재희/가정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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