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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독자글방> 명절인데 



나는 ‘직장맘’으로 오래 살아온 중년이다. 그러다보니 평생 아이들에게 집밥을 잘해주지 못하고 잘 보살펴 주지도 못하면서 키운 죄책감이 늘 있었다. 그래서 그간 궁여지책으로 실천해온 것은 주말마다 찾은 외식이었다. 물론 아이들을 핑계로 남편도 나도 좀 잘 먹고 좋은 분위기에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싶었다.

신정 때 이미 양가 어른들께 인사를 마친 우리는 요번 구정에는 좀 좋은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가기로 하고 큰아들에게 예약을 주문했었다. 왜냐하면 명절에는 식당문을 닫는데도 많지만 특히 요즘은 전에 없이 식당에서 아이들과 부모의 신경전이 자주 눈에 뜨이기 때문에 좀더 좋은 곳을 찾고 싶었다.

“아이가 달래도 말을 안듣네요” 당황한 엄마의 변명, “부모가 그냥 식사만 하더라구요” 노골적으로 부모를 혼 내키는 이들, 대놓고 눈총 주는 종업원들. 모두가 ‘갑’이고 모두가 ‘을’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오고, 남편은 그때마다 “당신, 무슨 죄졌어?”라곤 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어서 식당에서 이이들이 보채도 딱히 아이들 손에 쥐어줄 것도 없었고, 민폐가 되지 않으려 허겁지겁 먹이고, 먹고, 나서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선지 요즘도 아이들과 승강이 하는 엄마들을 보면 이심전심 직장맘의 아픔이 느껴온다.

그런데 분명한건 그때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무척 얌전했다. 최소한 지금처럼 아이들이 왕이고 상전은 아니었다. 최소한 아이들이 어른들을 잡고 살지는 않았다.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활개를 쳐도 기권인지 포긴지 부모는 잠잠하고, 선뜻 그런 아이들의 훈육을 나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도 지금은 없다.

울고 떠들어도 왕인 아이들을 어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선생을 잡을 때가 있어 교사가 교직의 천직을 집어치우기도 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리기도 한다.

 

요번 설날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머리위로 올라가 할아버지의 상투를 흔들고 장난질을 칠지, 얼마나 많은 손주들이 앙상한 할머니의 등뼈를 혹사할지 참 염려스럽다. 그렇다고 ‘무개념하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66%의 부모가 통제를 못하겠다는데 부모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식당, 카페, 마트, 영화관 어디서든 아이들은 떼를 쓰고, 30%의 엄마들이 우울감이나 양육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데 ‘육아정책포럼’이니 ‘아동의 공공장소 실태와 대응’이니 하는 점잖은 학문은 이젠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키즈존’을 늘리고, 신세대들이 출산율을 줄이고, 정부에서 베푸는 돌봄서비니 저출생예산, 결혼장려금이니 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나, 둘 온실속 왕자와 공주로 귀하게 사는 요즘 아이들의 잘못인가? 그렇다고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잘못인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아이들의 통제불능은 분명한 ‘민폐’이다. <성순애/직장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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