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독자글방> 엄마도 상처 받는 사람이다
- 하베스트
-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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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TV프로에서 예쁜 연예인 한분이 카메라 앞인데도 엉엉 울면서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도 젊고 예쁠 때가 있었고, 엄마도 사랑하는 남자랑 연예를 하던 젊을 때가 있었더라구요” “엄마는 나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고, 엄마 인생은 나와 내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인줄만 알았어요” 그의 눈물범벅에 함께 출연한 사람들도 울고, 사회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프로를 지켜보던 엄마의 입장에 있던 나는 그 순간 ‘내 딸도 저 프로를 봐야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왜 엄마는 감정도, 느낌도, 아픔도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지, 왜 엄마한테 공없이 이것저것 시키고, 화풀이 하고, 성질대로 퍼붓고, 다음날 또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자기들 치다꺼리를 해줄거라 믿는지 따지고 싶었다.
남편과 사별후 혼자 자식들을 키우고 그 자식의 자식들까지 줄줄이 키우며 살다보니 나는 너무 일찍 젊음도, 아름다운 추억도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가을이 왔는지, 단풍이 들었는지, 추수철이 되었는지, 세월이 멈춰버린 듯 했다. “엄마, 애들 재우고 집에서 쉬세요. 모처럼 영화 한편보고 올게요” 문을 나서는 딸과 사위의 뒤통수를 보는데 와락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주들을 재우려면 밥 먹이고, 씻기고, 이 닦아주고, 큰놈 작은놈 가방도 들여다봐야하고, 일이 좀 많은가. 그게 집에서 쉬는 건가? 오늘밤엔 기필코 들어오는 대로 한바탕 따져 물으려고 벼르고 별렀다. 그간 가슴에 못처럼 박힌 딸의 차가운 말들과 맘대로 퍼붓던 딸의 화풀이로 아팠던 상처들이 되살아 올라왔다.
그런데 아뿔싸! 손주들을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이 들어버렸다. 나이 들어 피곤한 건지, 나이 들어 ‘서운병’이 생긴 건지, 새벽이 되니 이 생각 저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조용조용 부엌에 나가 차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큼지막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섰다.
“나한테 해준 게 뭐냐” “왜 낳았냐” “노인이 뭘 아냐” “엄만 가만히 있어” 온갖 말로 부모를 무시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부끄러워하는 자식들도 수두룩하다는데 이 정도면 나는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건가 혼돈스럽기도 했다.
“엄마, 어디에요?” “얘기도 안하고 그냥 나가면 어떡해요?” “걱정했잖아요” 새벽같이 나와서 모처럼 장날을 즐기며 시장 맛집에 편히 앉아 울리는 전화를 받았더니 딸아이의 폭포수 같은 따발총 원망이 쏟아졌다. 손주들의 재잘대는 소리도 전화통너머로 들려왔다. “아, 마침 장날이라 일찍 나와서 시장 한 바퀴 돌고 있다. 쉬면쉬면 살거 사면서 밤에나 들어갈게” 나는 맘에도 없는 엉뚱한 장타령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ㅡ그래, 나는 엄마다. 걱정했다는 자식의 말 한마디에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엄마다. 그런데 명희야! 엄마도 상처 받는 사람이고, 엄마도 영화감상도 음악회도 즐기고 싶은 감성이 있단다. 가을이면 산으로 단풍놀이도 가고 싶고, 때론 학창시절에 시를 낭독하며 교회에서 ‘추수감사의 향연’을 빛내던 소녀감성이 쏟아지기도 하는 여인이란다. 그리고 저녁이면 자식들이 아픈 곳에 파스도 붙여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길 기다리는 노인이란다.ㅡ <조화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