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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칼럼방 > 묘비에는 이름만 쓰고

Updated: Jun 5


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로 번갯불에 콩 궈 먹듯 치른 조기대선이 끝났다. 나라가 온통 쑥대밭이 되는 것 같아 날밤을 새며 걱정도 했고, 서커스단의 곡예를 보듯 가슴이 서늘할 때도 많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숨소리도 못 내게 억죄던 기괴한 권력놀음과 어린애들처럼 편짜먹고 하는 유치찬란한 권력다툼을 다시는 안보고 싶다.

생각하면 모두 덧없는 욕심, 어차피 다 놓고 가야할 헛된 망상이거늘 명함에 즐비하게 권력직함을 나열한들 무슨 소용인가. 지난달에 치른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통해 알려진 그분의 청빈소박한 삶과 우리 정치계의 휘두르는 권력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정신이 산란하다.

“묘비엔 이름만, 삼중관 대신 나무목관, 운구차량은 평시 타던 흰색 포프모빌(Pope mobile)로, 시신은 아무 장식 없이 조용한 마조레 성전에” 가슴 찌르르한 교황의 이런 유언이 우리나라의 저질대선판 덕분에 더욱 빛나 보였다.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분, 그의 유언대로 역대 교황들이 묻힌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뒤로하고 조용한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전으로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운구는 앞뒤 단출한 2대의 의전차량이 말하듯 케빈 페럴 교황청 국무원장 등 추기경 10여명, 그리고 가족친지들의 차량이 뒤따른 검소한 장례행렬이었다. 나는 TV앞에서 헬리콥터와 무인기(드론)의 조용한 중계로 숨죽이며 작별인사를 했다.

마조레 성전 앞으로 쏟아져 나온 수만의 시민, 흰색과 노란색의 바티칸 시국 깃발과 3색 이탈리아 깃발,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 국기, 구약성서의 시편을 노래하는 그레고리안 성가, 모두들 내 심정과 똑같은 마음으로 교황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을 것이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부활절 미사를 집도한 성직자로서의 사명, 세상에 놓고 간 전재산 100달러의 유산,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추기경시절, 사제의 기숙사 ‘성 마르타의 집 201호’에 거주하며 식판을 들고 공동식사를 하던 교황시절. 그분의 라이프스타일과 우리 정계지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클로즈업되어 내 눈에 비쳐왔다.

육신의 덧없음을 아세요? 욕심에 빠져 싸우고, 뺏고, 상처 주지 마세요” 마지막 남기고 가셨다는 교황의 이 메시지가 공교롭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에게 당부하는 유언처럼 찡하게 박힌다. 안정되고 전진하는 나라, 성숙한 정치인, 믿을 수 있는 지도자들, 그리고 우리는 K문화의 자존심을 되찾아 행복한 국민으로 살게 되기를 다시금 마음 가다듬고 빌며 기도한다. <김새희/글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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