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의 일본이야기> 처갓집으로 첫인사 가던 날
- 하베스트

- Aug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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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더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결혼 전,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태우고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가던 날, 땀이 쏟아지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메구미와 사귈 때 예비 장인장모님께 결혼승낙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다리가 후덜덜, 몸도 후덜덜 거렸습니다. 같은 한국사람도 아닌 일본 분들이기에 말도 서툴고 문화도 서툴었던 당시의 나는 큰 고역이었습니다. 게다가 초보운전사로 낯선 길을 가면서 손에 진땀이 푹푹 났습니다.
“아아ㅡ” 그때 갑자기 메구미의 입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신호등의 빨간불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Stop 싸인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교통위반을 한 셈이지요. 결혼할 여자 앞에서 꼴이 우습게 되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다행히 차가 없는 한가한 시골길이어서 사고는 면했지만 그렇다고 잘못한 일이 잘한 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후 세월이 가고 모처럼 결혼기념일을 맞은 어느 날, 아내와 나들이를 가려고 나서는데 아내가 미리 운전석을 차지하고 앉아 자신이 운전을 하겠다고 박박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시골길로 한참을 달릴 텐데 남편인 나를 믿을 수가 없다는 눈치였습니다. 모처럼 기분 좋게 놀러 나가려다 아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기분이 잡쳤습니다. 그 옛날 신호등을 안 지킨 대가를 아직도 혹독하게 치르는 내 모습이 한심했습니다.
결혼 때 ‘부부십계명’을 인터넷에서 찾아본 기억이 있습니다. 부부생활을 하며 지켜야 할 10가지 당연한 법들이 교과서처럼 적혀있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들이지만 그중 하나라도 소홀히 생각하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주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오래 살아보니 지키기 힘든 부부십계명이었습니다. 분명 뻔한 쉬운 일인데 너무나 소홀해지기도 쉬웠습니다. 마치 범하기 쉬운 교통법규 같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통법규들과 부부십계명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모두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중요한 것이 닮았고, 소홀해지기 쉬운 것도 닮았습니다.
신호등이 있다고 해서 교통사고가 사라지지는 것이 아니듯, 부부십계명이 있다고 해서 부부싸움을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고들이 신호등을 안 지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호등이 무용한 것은 더욱 아닙니다. 더 큰 혼란과 더 큰 사고를 예방하고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호등은 반드시 필요한 곳에 반드시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부부간의 여러 신호등은 잘 세워져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잘 작동되고 있는지, 그 신호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점검해봅니다. 마음이 뜨끔합니다. 많이 위반했습니다. 정성껏 적어 책상 앞에 붙여놓은 부부십계명은 빛이 바랬고, 귀가 따갑도록 되뇌던 결혼서약도 잊어갑니다. 더 깊고 더 넓게 다지고 숙고하리라 오늘 다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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