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되어 외딴섬이나 산골벽지에 가서 꿈을 펼치고 싶었던 나는 첫임지로 강원도 정선 산골학교에 근무하면서 참 행복했다. 그때 친한 친구가 축하카드를 보내왔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파릇한 보리밭 사이의 긴 흙길을 걸어가는 카드였다. 제목이 ‘길’이었다. 지금도 무슨 진품처럼 가끔 그 ‘흙길’을 떠올려본다.
엘리트들만 가는 성공의 비단길도 있다. 그런 길을 버리고 한 병든 선교사가 아프리카 험지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40대 에티오피아 김태훈 선교사의 간증영상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 병원의 간이식 전문의였다는데 어느 날 전문인자비량선교사를 지원했단다. 그런데 활동중, 느닷없이 파킨슨병에 걸려 오른쪽 팔과 다리가 굳어지는 경직증상이 생겨 더 이상 수술칼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단다. 나는 그분의 간증을 들으며 내 생명을 1년이라도 단축시켜 저분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좀 연장시켜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파킨슨 때문인지 본디 태생이 그런지 간증 내내 그분의 굳어진 진지모드의 얼굴표정과 느릿느릿 말투는 답답함을 넘어 십자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수저의 집착을 벗어버린 그분의 평화로움이 전해져 왔다. 코로나로 외국인들에게 현지를 떠나라는 명령이 있어 잠시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그는 전기도 인터넷도 여의치 않고 치열하게 내전중인 그곳을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듯 아이들과 아내의 손을 잡고 속히 돌아가고 싶단다. 그분은 거기가 ‘평안의 길’이라 했다.
탐욕자들이 가는 길도 있다. 헤롯왕이 간 길이고, 사울왕도 막판에 그 길을 갔다. 자기 집착을 끌어안고 사명이라 착각하는 자들이 바들거리며 가는 추한 길이다. 정치꾼들이 감언이설로 가는 길이고, 사회의 악, 망나니들이 비틀거리며 가고 있는 길이다. 거룩을 가장하고 내려놓음을 모르는 삯꾼목자들이 거들먹거리며 가고 있는 길이다. 정말로 구질구질한 길이다.
너도나도 인간은 모두 길을 간다. 죽을 때까지 간다. 결국 죽음과 맞닿아 있는 길이다. 주어진 일을 충직하게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은 복되다. 왜냐하면 천국과 연결되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시대의 명교수이신 이어령 교수가 돌아가시기 직전 책을 내실 때 하신 폭소이야기로 맺는다.
30대 교수ㅡ자기도 모르는 말을 열정으로 지껄인다. 40대 교수ㅡ자기가 아는 것만 전달한다. 50대 교수ㅡ학생들이 알아듣는 말만 한다. 60대 교수ㅡ입에서 나오는 대로 얘기한다. 80대 교수ㅡ한참 얘기하다가 잔다. 무얼 말하는가?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닐뿐더러 웃어넘겨서도 안 되는 말이다. 누구라도 정도(normal way)를 벗어나면 철없는 인간이 되고, 노욕이고, 콤마이하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니 바른 길, 똑바른 길, 옳은 길을 가라는 얘기이다. <발행인/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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