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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고마운 교통사고



일본에서 일본인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사는 한 가장이 있습니다. 다른 가정의 부부들처럼 가끔 부부싸움도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한 남자는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간밤에 꾼 기분 나쁜 꿈 때문입니다. 평소 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제의 꿈은 너무 생생했습니다.

점심때부터 갑자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 비가 남자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혹시 미끄러운 길 때문에 아내에게 사고가 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생긴 것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무시하려고 해보지만 한번 떠오른 불길한 생각은 일하는 내내 남자를 괴롭힙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친 남자는 “비 많이 오니까 운전 조심해야 돼”라는 카톡문자를 아내에게 보낸 뒤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 빨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아내에게 요즘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초조하게 신호등의 빨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남자의 차 뒤에서 ‘쾅’하는 충격이 전해집니다. 미끄러운 길 때문에 뒤에서 오던 차가 신호대기 중이던 남자의 차에 부딪친 것입니다. 불길한 생각대로 사고가 나자 남자는 갑자기 기분이 안정되었습니다.

‘내 아내가 아니라 나였구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걱정하던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자신과 결혼해준 아내와 몇 년을 함께 살아온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간단히 사고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가 지친 듯 소파에 앉습니다.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지옥 같은 불안에서 천국에 온 듯한 안도감에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교통사고가 났다며 짜증을 냈을 텐데ㅡ 걱정하던 아내가 아닌 자신에게 사고가 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혼자 웃고 있는 남자는 행복합니다.

남자를 불안하게 하던 거센 빗소리는 어느새 편안한 노랫소리로 변해있습니다.

남자는 생각해봅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오히려 편한 이 마음은 뭘까?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오히려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은 뭐란 말인가?

결혼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이런 심정! 이런 행복감! 싱글들은 꿈에도 모를 책임감에서 오는 어른스런 느긋함! 오늘 비로소 아내를 책임지고 사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된 흐뭇함에 남자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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