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목사의 사람사는 이야기>각혈을 하며…

Updated: Aug 4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께로 가리라’ 내 20대 젊은 전도사시절, 강대상 뒤에 엎드려 헌신을 고백하며 부르던 나의 18번 찬양이다. 일주일 내내 교회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고 문제 학생들을 돌보며 밤이면 습관처럼 강대상 뒤에 엎드려 기도로 밤을 새던 어느 날, 나는 교회에서 각혈을 하며 쓸어졌다. 폐결핵이었다.

왜 피를 토하는지도 모른 채 이번에는 각혈을 멈추게 해달라는 기도로 철야를 하며 울부짖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나중에 들으니 결핵이 왔다가 어느 틈에 나가버리고 폐에 흔적만 남았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나는 내 젊음을 바쳐 섬긴 답십리성결교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참 중요하다. 무슨 기도를 하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뉴스마다 코로나가 호흡기에 치명타를 입힌다며 Stay at Home 행정명령이 내려져 꼼짝달싹 못하던 때 나는 내가 호흡기 TB 환자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코로나 얘기 자체가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고 점점 마음에 불안공포가 오기 시작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911 구급차에 실려 가는 중환자가 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병원마다 코로나환자로 만원이고 면회도 안 되는 비상시국이건만 나는 결국 긴급으로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다.

불안증이 심하고 심장수술까지 한 중환자인 나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내 병실 바로 옆방 환자가 코로나에 걸려 코로나병동으로 옮겨가더니… 나를 진료하던 간호사 4명도 줄줄이 코로나에 걸려 병원을 떠나고… 수술후유증으로 나는 몸이 붓고 폐에 물이 차고… 그 와중에 가족들은 병원이 코로나 위험지대라며 몸도 못 가누는 나를 강제로 퇴원시키고….

휴ㅡ 긴 터널이었다. 21세기 현시대에서 나는 몸소 유월절 체험을 하며 죽음을 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1년! 지금 나는 핸디캡 카드를 차에 걸고 운전을 하면서 교회예배도, 해체되었던 모임도, 공원산책도 다시 열심히 한다. 그리고 그때 코로나 병동으로 가신 분들과 나를 위해 비상기도를 해주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죽기 살기 매달려 나를 살려낸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가끔 울컥울컥하기도 한다.

기도가 약해지거나 기도의 줄을 이탈하면 세상 걱정들과 인간적인 수단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기도가 빈약한 목회, 기도가 부족한 선교사역, 기도 없이 하는 복지사역, 기도를 잊은 영업, 기도 없는 자녀양육, 예수님의 이름만 빌리는 기도모임, 모두모두 부스스 허물어질 아슬아슬한 집짓기다.

청년 때의 열정이나 고민이 어른이 되어보면 별거 아닌 게 많고, 젊고 건강할 때 크게 문제가 되던 것도 나이 들거나 병들고 아프면 큰 문제가 아닌 것도 많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 상식적인 것 때문에 울고, 애타고, 화나고, 불안한 때가 어리석게도 참 많다. 성숙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참 늦다. 인간이란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부끄럽고 참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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