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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머리 깎는 날

Writer's picture: 하베스트하베스트



학창시절 내가 다니던 이발소는 조그마한 서민 이발소였습니다. 그런데 그곳 사장님은 학생들에게는 보통요금의 절반만 받습니다. 대신 머리는 집에 가서 감아야 합니다. 항상 은은하게 기독교방송을 틀어놓고 영업을 하셨습니다. 머리 깎는 내내 말없이 조용하셨습니다. 그리고 늘 친절하셨습니다. 처음 머리를 깎던 날 앞쪽의 세면대를 가리키며 “머리는 네가 감고 가라” 하셨습니다. 나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이발소를 다녔고 사장님은 늘 말없이 조용히 이발만 하셨기에 머리를 깎는 날이면 으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독교방송의 찬양이나 설교를 들어야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사를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그 이발소를 떠났습니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일찍 생긴 나에게 아내는 외모가 깔끔해야 된다며 머리염색을 해줍니다. 머리가 좀 길면 즉시 내게 이발 명령을 내리며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오늘은 머리를 깎는 날입니다. 내가 일본에서 단골로 이용하는 커트하우스는 옛날 학생 때 다니던 이발소를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이발이 끝나면 약간의 추가요금을 내고 샴푸와 면도 서비스를 받을지 그냥 갈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머리는 집에 가서 감을게요”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세련된 헤어숍에서 커트도 하고 다듬고 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형편이건만 나는 옛날처럼 스스로 머리를 감습니다. 염색은 아내의 서비스를 받으며 단장을 합니다.

커트하우스를 나와 집으로 오면서 옛날 이발소를 떠올려봅니다. 어른이 되어서 옛 시골 이발소를 떠올리는 이유는 나도 지금은 일본에서 예수님 믿는 크리스천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전도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이런저런 전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기독교방송이 흘러나오는 작은 이발소에서 싼 가격으로 학생들의 머리를 깎아주시던 그 이발소 사장님의 전도방법이 지혜로운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ㅡ 노래를 잘하거나, 기타라도 잘 친다면 거리에서 버스킹 찬양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일본사람들은 유난히 민폐를 싫어하고 예의범절을 따지니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면 싫어하겠지… 그렇다고 뛰어난 글재주가 있으면 간증책이라도 쓰련만 그런 실력도 없으니 ㅡ

머리를 깎고 집으로 오는 동안 운전을 하면서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마치 대단한 전도의 사명이라도 가진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차’했습니다. 안될 일, 못하는 일, 부정적인 일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천도 못할 거창한 전도방법만 골똘히 생각 했으니 헛웃음이 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주의 일이라 하셨으니 열심히 주님을 사랑하고 가장으로서 더욱 아내를 아끼며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모범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리고 일본사람처럼 조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증인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크리스천 증인의 삶’ 제목을 붙이고 나니 교복 입은 학생이 학교 규율을 두려워하듯 몸도 마음도 크리스천답게 더욱 매사에 잘 살피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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