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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Aging-아름답게 나이먹자> 크리스찬의 날갯짓



코로나 때는 집안에 갇혀서 가택연금자처럼 살아보기도 하고, 여름에는 역대급 폭풍우와 태풍에 덜덜 떨며 살기도 하고, 요즘은 고물가와 고금리 등 세상풍랑에 지쳐간다. 고통 없는 세상이 어디 있으며 고생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건만 사실 마음이 천근만근이고, 사업부진, 재산몰락, 가정불화 등등 땅 밑으로 꺼지고 ‘추락’하는 기분을 어쩔 수 없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하며 남탓, 세상탓을 죽도록 해보지만 모두 부질없다.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도 소용없다. 그건 폐인으로 전락하는 길이니까.

누가 추락하는가? 각박한 세상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부모를 공양해야하는 중년들이 추락한다.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이 추락한다. 비뚤어진 교육기관에서 정의를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추락한다. 감기 한번으로도 폭삭 사그라지는 요양원의 노인들이 추락한다. 추락의 공포에 소리 지르지 않는 새가 없듯, 추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바닥까지 떨어져 밑바닥에 서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비참한지를.

어떻게 하면 될까? 성숙한 사람은 이럴 때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살펴본다.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왜 밑창으로 나를 떨어뜨리셨는지를 생각한다. 추락의 늪에 서있는 사람은 다시 솟아오를 날개를 찾아야 한다. 몸 어디선가 꿈틀 대는 날개를 빨리 의식해야한다. 그리고는 날갯짓을 시작해야한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서!

두 날개를 활짝 펴서 다시 위로 솟아오를 수 있는 날갯짓! 추락한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해야 할 단 하나의 할 일은 ‘날갯짓’이다. 그게 기도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구하는 것, 하나님의 참견을 구하는 것, 그것이 크리스천의 날갯짓이다.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날개는 ‘추락’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비로소 찾게 된다. 그때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찐사랑도 보인다.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날개의 신비를 알지 못한다. 추락의 아픔을 아는 자만이 날개의 은총을 깨닫는다.

날개는 언제 생겼는가? 처음부터 이미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추락할 때 써먹을 날개를 주셨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희열! 이것이 다시 살아난 자의 승리이다. 다시 살아난 자의 할일은 밑바닥부터 바꿔져야 한다.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결기와 패기로 자신을 다지지 않으면 추락하기에 안성맞춤인 세상에서 또다시 날개는 접어지고 바닥으로의 추락이 온다.

하늘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다. 다시 솟아오르기에 참으로 좋은 이 감사의 계절에 ‘기도의 날갯짓’ ‘감사의 날갯짓’으로 모두들 다시 우뚝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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