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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포 김민호의 파란신호등>황금전선


혼자서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사는 야마나시에서 홋카이도까지는 기차로 10시간 정도를 가야 합니다. 이미 여름 꽃들이 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말로만 듣던 ‘벚꽃전선’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북쪽을 향해 달릴수록 창밖에는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 단풍이 져야하는 시즌에 이미 저물었던 꽃들을 다시 보고 있으니 신기했습니다. 마치 세월이 일주일전, 보름전, 한달전으로 자꾸 거꾸로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은 따뜻한 남쪽 오키나와와 러시아에 근접한 홋카이도의 기온차이가 크기 때문에 꽃이 피는 시기도 두 달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는데 이렇게 꽃풍경을 볼 수 있다더니 기이하고 신기했습니다.

봄이 되면 개화시기가 각기 다른 벚꽃들이 남쪽에서부터 북쪽 끝까지 일본열도를 붉게 물들이는 이른바 ‘벚꽃전선’이 진풍경을 이룬다 하고, 가을이 되면 추운 홋카이도를 시작으로 남쪽을 향해 일본전역을 단풍으로 물들이는 이른바 ‘단풍전선’을 이룬다더니 정말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때 아닌 꽃축제를 즐기게 된 것입니다.


그때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벚꽃전선’은 길지 않다는 것, 나의 젊음 또한 길지 않다는 생각이 번뜩했습니다. ‘단풍전선’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 아름다운 우리의 인생도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외국에서 외롭게 살아서인지 꽃을 보며 환호를 치면서도 왜 마음이 쓸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많은 생각을 한 기차여행이었습니다.

이제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을 향해 논밭의 곡식들이 일본열도를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황금전선’의 시기입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들판의 곡식들은 세상을 온통 누렇게 황금색을 띄면서 말없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 숙인 황금전선! 그 황금전선을 보면서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작심합니다. 세상에 유익을 주는 좋은 사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며 의미 있고 뜻 깊게 사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함을 느낍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좀 더 철든 마음의 수확을 거두고 싶습니다. 욕심, 미움 다 버리고 내려놓음의 평안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꽉 찼습니다. 잃었던 첫사랑 첫믿음의 감격과 감사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야겠다는 다짐도 새깁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복음으로 물든 영혼구원의 황금시대가 속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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