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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Aging-아름답게 나이먹자> 꼰대들



한해를 마감하며 떠오르는 장면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올해는 유독 가정폭력이 많았다. 깡패들이 뒷골목에서나 휘두르는 폭력을 스위트홈 가정에서 자기 가족을 상대로 휘두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병적발작이다.

남에게는 천사의 얼굴로 굴고 가족에게는 폭군으로 돌변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병자다. 무슨 병일까? 무슨 병이길래 육칠십 나이가 되어도, 고상 거룩을 입애 달고 살면서도, 툭하면 주먹과 구둣발이 자기 부인에게 올라갈까? 나는 그걸 ‘꼰대병’이라 명명한다. 제발 이런 병자는 올해로 마감되기를 바란다.

미국 이민초기 나는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를 하는 학부형으로 돈을 벌기위해 파사데나 흑인지역에서 LA까지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며 출퇴근을 했다. 이른 아침, 텅빈 버스에 올라서면 “굿모닝 마담” 훤칠한 흑인운전사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특유의 친절함으로 첫손님인 나를 맞아준다. 글렌데일 근교에서 버스를 갈아타면 미국 할머니들이 향수냄새를 풍기며 환한 미소로 버스에 오른다. 그들은 은퇴후 병원자원봉사를 하는 천사들이다.

LA로 들어서는 버스로 갈아타면 여러 인종들이 우르르 타고 내리는데 간혹 한국 사람들이 탄다. 한인타운으로 문화취미활동을 하러 가는 모양인데 문제는 버스 안에서의 추태다. 널따란 챙 달린 모자를 쓴 화려한 할머니 옆에 앉기 위해 거무칙칙한 할아버지들의 자리챙탈전이 가관이다. “내가 미리 찍은 자리야”라며 서로 한국말로 우기며 떠드는 할배들은 이성은 없고 감정만 살아있는 동물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꼴불견 꼰대들’이다.

은퇴를 삭이지 못하고 한국으로 일터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남편을 따라 잠시 한국에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꿈에도 만나고 싶지 않은 한 꼰대를 만났다. 4번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로 길을 건너 우리집 아파트로 가는데 요란히 풍기는 더덕냄새에 현옥되어 따라갔다. 강원도 정선에서 첫 교사생활을 시작한 나는 산골하숙집에서 먹던 감자밥과 더덕구이가 생각나 한껏 기대도 되었다.

할머니 한분이 조그마한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오이, 호박, 더덕을 담아놓고 마지막 떨이라며 팔고 있었다. “날도 저물었는데 이거 제가 다 살 테니 어서 집으로 들어가세요”라며 나는 필요하지도 않은 고추며 가지까지 몽땅 사들고 지하도를 빠져나오며 흘깃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는 어디서 꺼냈는지 또 똑같이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오이랑 고추랑 가지를 담고 있었다. 기막힌 상술이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한 나는 가방 안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지하도를 진동시키던 그 더덕냄새는 어디로 갔는지 더덕을 코끝에 갖다 대도 향긋한 더덕냄새는 없었다. 인생 끝자락을 사는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도대체 왜 그러고 살까? 도대체 어디서 무슨 향료로 더덕냄새를 만들어 사람을 유인한 것일까? 그렇게 더덕을 팔아 얼마나 벌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머리하얀 꼰대’ 참 가엽고 불쌍한 꼰대였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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