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마음의 여유이다. 그들의 마음은 늘 넉넉하고 후하다. 반대로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걸 병적으로 집착하며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뚜렷한 이유도 이슈도 없이 끊임없이 정부를 까고, 큰교회 목사를 헐뜯고, 가짜뉴스에 혹하고… 혼자 의로운 척 착각하며 설친다. 통제가 안 되는 집착병 환자이다.
이룰 수 없는 욕망, 공상으로 끝나는 희망. 늘 계획을 세우고 조직표를 짜며 설치지만 마음은 늘 허하다. 자기의 못난 부분이나 부족한 과거를 덮고 싶은 일종의 영웅심도 발동한다. 아프카니스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난민을 학살하는 탈레반도 이런 환자다.
이런 병은 어떻게 고쳐야 할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좋은 친구가 답일 수도 있고, 신앙의 깊은 체험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고, 취미나 특기로 대체하여 끝낼 수도 있다.
그러면 누가 좋은 친구일까? 허식도 없고, 들추어낼 가식도 없는, 진실한 우정이 있어야 진짜 친구다. 이해타산으로 엮인 사이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감추고 숨길 사연이 있는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없고 스트레스만 남는다. 색안경을 끼고 봐야할 사람도 피곤할 뿐, 친구가 아니다. 가슴속 깊은 아픔을 서슴없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이런 친구가 그 옛날 시인이 노래한 ‘설움에서 반가운 벗’이다. 이런 친구 한두 명이면 허한 마음이 채워지고 고질병이 치유된다.
친구와 정기적인 연락이나 가벼운 대화만 해도 수명이 연장된다는 하버드대의 연구나, 1마일 이내에 친구가 거주하면 25%의 행복감이 상승하고, 배우자나 형제 등 가까운 사람과 6~7시간을 함께하면 12배의 행복감이 상승한다는 논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리노이대학은 SNS나 소셜미디어에 깊이 빠지면 부부의 유대관계를 망치게 되어 젊은이들은 자살을, 노인들은 우울증을 앓는다는 보도를 냈다. 인터넷 중독은 좋은 사이를 파괴한다는 경종이다.
다음으로 신앙문제인데, 꿈이나 환상이나 말씀이나 기도의 응답이나 그 어떤 체험이든 영적인 체험을 하면 육에 속한 병이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별로 큰문제로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 한다. 수박 겉핥기로 수십 년 교회출석만 한 사람은 이런 영적 충만의 참 맛을 모른다.
끝으로 취미와 특기 문제인데 이는 잃었던 자아를 찾아 새출발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처방이다. 취미와 특기를 살리는 것은 잃었던 활력을 되찾는 활력소도 되지만 세월을 거슬러 젊음을 찾게도 하고, 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서 나이 들어 찾은 특기로 위대한 집필가도 나오고, 기업가도 나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정도를 넘는 집착은 일종의 우상이다. 우상이란 결국 영혼까지 망가져야 끝을 낸다. 그래서 치료가 시급하다. 특효약은 참 친구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로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주님과 전폭적인 짜릿한 만남이 이루어지면 영혼의 허함이 채워진다. 그래서 성경은 “영혼이 잘돼야 범사가 잘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음으로 마음의 허함은 동반자나 다정한 벗인 사람이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정직과 신실함의 투자를 기꺼이 바쳐야 친구도 부부도 얻을 수 있다. 둘레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누가복음 저자가 말한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결론은 손에 쥔 것, 통제가 안 되는 집착병. 마음에 쥔 것, 허공에 뜬 욕망, 모든 인간적인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말씀과 성령, 그리고 친구나 동반자가 허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으며 행복해 질수 있다. <원더풀라이프 발행인/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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