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점점 쇠퇴해 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처음은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이는 걸로 시작하여 점점 누렇게 퇴색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단풍객들은 가을을 붉고 찬란한 아름다움이라 감탄하고, 인생의 가을을 사는 여자들은 어석거리는 낙엽소리에 비로소 속빈 강정이 된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자긍심이나 입에 발린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대기까지 했던 세월이 속절없다 느낀다.
어제 서울에 사는 조카가 “아깝다”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뭐가 아깝다는 건지 물었더니 “세월이 너무 빨라”라고 했다. 가여웠다. 가엾고 속상했다. 젊고 좋은 나이부터 호된 인생가을의 삶을 산 조카다. 여자의 가을은 유독 빨리 지난다. 어물어물 하는 동안 종착역이 돼버린다. 세월이 가면 건강도 간다. 남자보다 일찍 성숙한 여자이기에 남자보다 더 빠른 인생겨울을 맞는다. 나도 그랬다.
나는 유서를 써본 일이 있다. 의사를 통해 죽음을 통보 받던 날, 너무나 이른 나이에 인생겨울이 닥쳤다는 생각에 무지 춥고 떨렸다. 그때 거실 유리문을 통해 찬연히 비치는 햇빛이 비단결처럼 곱게 느껴졌다. 그 빛을 바라보면서 남은 날을 ‘비단결 같이 곱게’ 보내고 싶었다. 텅 빈 마음에 단 하나의 그 바램은 나를 천사로 만들었다.
평상시에 느끼지 못한 태양 볕의 찬란함이 참으로 황홀했다. 순간 겨울터널 같던 두려움은 싹 사라지고, 밝은 빛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는 그림이 그려졌다.
얼마 후 의사의 오진으로 밝혀져 내가 쓴 유서는 없어지고 나만 남았다. 그러나 ‘비단결 같이 곱게’ 살려던 그때의 결심은 지금도 살아서 내가 어디론가 비뚤게 가려 치면 여지없이 나를 바르게 끌어오곤 한다.
고국을 떠나면서, 아니, 결혼하여 남편의 인생에 뛰어들어 주체가 아닌 개체로 살게 되면서 나는 일찌감치 봄날의 애틋함이나 여름날의 촉촉함은 건너뛰고 낙엽진 늦가을부터 살아온듯하다. 내 젊은 날을 남편의 학비를 버는 학부형으로, 고가의 원서책 값을 치르는 보호자로,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가장으로 너무도 이른 나이에 늦가을인생을 살았다.
거기에 미적지근한 캘리포니아 날씨는 계절도 잊게 만들어 세월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른채 일에만 취해 살았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았기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고, 거둬야할 친척들도 생겨 며칠 몇 달씩 먹이고 거두면서 그마저 내게 주어진 몫인 것처럼 살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가을이란 짧고 아쉬운 계절이었다. 올 가을도 곧 끝나고 겨울이 오리니 이제부터는 기필코 남은 날들을 춥지 않은 행복한 날들이길 염원한다. 남아있는 세월이 결코 길지 않은 인생겨울에 서있노니 더욱 간절해지는 일상의 행복! 그래서 마음관리를 생명관리라 여기고 오늘부터 다음과 같이 생각을 고쳐먹는다.
사시사철 따스한 햇볕을 만끽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모닥불 피워놓고 캠프화이어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좋은 거 챙겨먹으며 여유 있게 살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상큼한 봄이나 싱그러운 여름을 도둑맞았다는 생각이나 놓쳐버린 세월이 억울하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을 지워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금빛추수를 감사하며 늘 소녀처럼 설레는 겨울꿈을 꾸며 살기로 한다. 사랑한다고 속삭여 주시는 주님과 새 힘을 충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박명순/ 원더풀라이프 발행인>
Comments